▲ 2025년 엔씨소프트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자사주 비중은 10% 남짓으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의 지분율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그동안 자사주를 통해 방어해온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규제망을 피할 현실적인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26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자사주의 전략적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
엔씨소프트의 2025년 말 기준 자사주 보유 비율은 약 9.9%다. 최대주주인 김택진 공동대표(12.20%)의 지분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고, 넷마블(4.7%), 크래프톤(5.8%) 등 주요 게임사 자사주 보유 비율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높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월 넷마블이 보유 자사주를 전량 소각을 결정, 크래프톤이 올해 3개년 자사주 처분 계획을 밝힌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과거 경영권 분쟁을 겪은 적이 있다. 2015년 넥슨과 경영권 다툼 당시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해, 위기를 넘겼다.
이 뒤 자사주 비중은 주가 방어와 임직원 보상, 전략적 활용 등을 위해 꾸준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돼 왔다. 넷마블이 엔씨소프트 지분 8.9%를 확보하면서 2015년 말 0.3%까지 낮아졌던 자사주 비중은 다시 9.9% 수준까지 회복됐다.
다만 지난 2월25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따라 자사주 운용 환경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분은 1년 6개월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한다.
김택진 공동대표의 지분율이 12.20% 수준인 상황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 전략을 더 이상 활용할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지배구조도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9.43%), 넷마블(9.05%), 국민연금(7.22%) 등 주요 주주와 김 대표의 지분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2대주주인 PIF는 장기투자를 선호하며 투자한 기업들의 경영권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외부 자본 특성상 향후 경영권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대주주인 넷마블은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지만 두 기업이 체결한 주식매도 제한 계약이 2021년 종료된 점은 변수로 꼽힌다. 최근 넷마블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한 다른 기업 지분을 연달아 매각하는 등 비핵심 자산 매각 기조를 보이고 있는 점도 잠재적 리스크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사이의 전략적 제휴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며 "리니지 지식재산(IP)을 활용한 넷마블 게임들의 매출 창출력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엔씨 측이 재계약 때마다 로열티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넷마블이 IP 재계약을 포기하면 양사의 지분 결속력도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엔씨소프트는 10일 정정공시를 내고 기존 '자사주 소각' 조항을 '경영상 목적 보유 및 처분' 조항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사진은 성남 판교 엔씨소프트 R&D센터.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자사주 21만5440주 처분을 통해 보유 비중을 약 9.0%로 낮추는 한편 정관 변경을 통해 대응책을 마련한다.
이번 주총 의결을 통해 정관에 '자사주 소각'을 원칙으로 하되,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있을 경우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한다.
임직원 보상, 전략적 투자 등의 목적으로 자사주 활용할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만 이전에 비교해서는 자사주 활용에 큰 제약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하는 정부 정책 기조와 투자자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원준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2일 경영전략 간담회에서 "보유한 자사주 일부는 임직원 보상용으로 활용하고 그 외는 상법개정안 범위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자사주 소각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결국 특수관계인의 지분 추가 매입을 제외하면, 김 대표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없다.
재계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요구하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도입도 현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다. 앞서 한차례 도입이 검토됐으나 논의 과정에서 무산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에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매우 낮은 가격으로 신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공격자의 지분 가치를 희석하는 경영권 방어책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로선 고려아연 분쟁 사례처럼 상호 지분을 10% 초과 보유해 의결권이 동반 상실하는 방식으로 '상호주 조항'을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일한 고육지책"이라며 "그 외에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