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1조 역직구' 승부수 던져, 지마켓 '알리바바 협력' 우려 지우고 기회로 만들까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마켓과 알리바바그룹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정 회장이 2026년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 <신세계그룹>

[비즈니스포스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손잡고 5년 내 연간 1조 원 규모의 역직구 거래액을 달성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마켓 판매자와 국내 중소 브랜드 상품을 알리바바 계열 글로벌 플랫폼에 연동해 지마켓을 ‘K상품 수출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불안한 시선도 나온다. 지마켓이 알리바바 생태계 안에서 ‘상품 공급자이자 운영 노하우 제공자’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마켓이 알리바바그룹과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놓고 외부 채널에 대한 의존도만 높이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5일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역직구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신세계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중소·중견 판매자와 제조사를 발굴해 상품 경쟁력 강화 교육과 운영 노하우를 제공한다.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인공지능(AI) 번역과 이미지 단위·언어 변환, 물류·배송 지원 등 판매자 운영 인프라 전반을 지원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알리바바의 ‘라자다’ 플랫폼을 통해 동남아 5개국에 진출했고 올해는 ‘다라즈’와 ‘미라비아’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소형 판매자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 알리바바그룹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협력을 두고 '플랫폼 경쟁 대신 공급자 역할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지마켓과 국내 판매자가 등록한 상품을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라자다·다라즈·미라비아 등 해외 플랫폼과 연동해 판매하는 것이다. 지마켓이라는 브랜드 아래 글로벌 고객을 직접 모으는 모델이라기보다 알리바바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 간·소비자 간 결합 거래(B2B2C) 구조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트래픽과 데이터를 자체 플랫폼 안으로 모으는 집객력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지마켓이 알리바바그룹과 협력하며 해외 플랫폼에 탑승하는 것은 자체 플랫폼 파워를 키우기보다 외부 생태계에 상품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지마켓은 이베이코리아 시절부터 100만 개 이상의 상품과 대규모 판매자 집단을 축적해 온 대표적 오픈마켓이다. 알리바바그룹과 협력 구도가 강화될수록 20년 넘게 쌓아온 자산이 ‘지마켓 앱’ 안에 축적되기보다는 알리바바그룹의 글로벌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데 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용진 '1조 역직구' 승부수 던져, 지마켓 '알리바바 협력' 우려 지우고 기회로 만들까

▲ 신세계그룹이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역직구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1월5일 중국 베이징에서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가 MOU를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신세계그룹>


지마켓의 중장기 경쟁력이 중국 플랫폼에 흡수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는 알리익스프레스·테무가 빠르게 점유율을 넓히며 지마켓을 앞지른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이커머스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쿠팡이 3440만 명으로 1위, 이어 알리익스프레스 992만 명, 11번가 881만 명, 테무 793만 명, G마켓 685만 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마켓이 알리바바그룹과 손잡고 역직구 채널을 개방할 경우 한국 중소 제조사·판매자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상품 정보와 판매 운영 노하우가 역으로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공략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기반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신세계그룹은 운영 노하우와 정보가 알리바바그룹이 아니라 판매자에게 제공되는 구조라며 선을 긋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보의 소유 주체보다 ‘정보가 흐르는 경로’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거래와 운영 과정이 알리바바그룹의 인프라 위에서 이뤄지는 이상 데이터의 종착지는 플랫폼 운영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번역·이미지 변환·가격 대응 알고리즘, 물류 트래킹 시스템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상품 선호도 △가격 탄력성 △카테고리별 매출 추이 △재고 회전 패턴 등 핵심 상업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개별 판매자 정보를 열람하지 않더라도 한국 제조·유통 생태계의 ‘공급망 지도’가 플랫폼 내부에 그려질 가능성도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지마켓이 축적한 여러 운영 노하우 등은 알리바바그룹이 아닌 판매자들에게 공유되는 부분”이라며 “이번 협약은 국내 판매자들이 해외에 수월히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마켓 판매자들이 알리바바그룹의 운영 인프라를 폭넓게 활용하게 되면 지마켓의 자체 기술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플랫폼 경쟁력은 트래픽이나 거래 규모보다 자체 기술과 운영 체계에서 좌우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알고리즘·데이터·물류 시스템을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면 지마켓이 쌓아온 독립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과 차별화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용진 회장은 2021년 3조4404억 원을 투입해 지마켓(당시 이베이코리아)을 인수하며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로 사업 축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인수 당시의 포부와 달리 이후 점유율이 꾸준히 하락하며 영업손실 기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과의 협력이 정 회장의 ‘전략적 우회’로의 방향 전환이라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자체 혁신만으로 쿠팡과 중국계 플랫폼의 공세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총거래액을 방어하고 재무적 실익을 확보하려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정 회장이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의 합작법인(JV) ‘그랜드오푸스홀딩스’ 이사회 의장을 직접 맡은 점도 이러한 전략적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유통 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국경이 없는 무한 경쟁 체제로 진입했다”며 “이러한 환경에서 지마켓은 국내 판매자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알리바바그룹은 우수한 K상품을 글로벌 플랫폼에 공급받는 ‘윈윈’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