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당한 공사비 증액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원의 '의결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법률적 사안이다. <픽사베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제 곧 입주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시공사로 선정된 무지개건설(가명)은 갑자기 조합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고 조합은 공사도급계약상 공사대금을 증액하는 취지의 총회 안건을 상정했다. 무지개건설은 시공자로 선정되기만 하면 아무런 공사비 인상도 없을 것이라고 굳게 약속했는데 공사비가 200억 원 넘게 올랐다.
문제는 사전점검을 해보니 실제 아파트의 자재 사양이 하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대금은 더 올랐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합장 김판수(가명)는 계속해서 공사비 증액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만일 공사비 증액 안건이 부결되면 무지개건설이 유치권을 행사할지도 모르니 반드시 안건이 가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조합장인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총회 안건에는 조합은 어떠한 사유로든 무지개건설을 상대로 하자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도기의 가족들은 우여곡절 끝에 재건축 사업의 성공으로 새 아파트를 얻게 될 것이라 들떠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저품질 아파트에서 하자 보수도 청구하지 못하고 부담금만 잔뜩 부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다.
재건축 조합에서 시공사의 부당한 공사비 증액을 총회 안건으로 상정할 경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 '의결정족수'를 확인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정비사업비가 10% 이상 늘어나는 경우 조합원 과반수가 아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엄격한 정족수를 요구한다(제45조 제4항). 만약 이번 증액 규모가 누적해 10%를 넘는다면 조합원 3분의 1만 뜻을 모아도 부당한 증액을 막아낼 수 있다. 집행부가 이를 피하기 위해 안건을 쪼개서 상정하는 '편법'을 쓰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둘째, '유치권 행사' 협박에 현혹되지 마라. 시공사와 조합 집행부가 흔히 사용하는 무기가 "부결 시 유치권 행사로 입주 저지"라는 협박이다. 그러나 유치권은 지급 기일이 지난 '확정된 채권'이 있을 때만 성립한다(민법 제320조). 총회에서 의결되지 않은 증액분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래의 채권'에 불과하며 시공사는 이를 근거로 유치권을 행사할 법적 권한이 전혀 없다. 만약 강행한다면 오히려 시공사가 형사상 업무방해죄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부제소 합의'라는 독소조항을 경계하라. 총회 안건에 "향후 일체의 이의제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이는 전형적인 독소조항이다. 이러한 '부제소 합의'가 가결되면 추후 심각한 설계 변경이나 하자가 발견되어도 법적 대응이 불가능해진다. 조합원의 고유한 권리를 영구히 박탈하는 계약은 민법 제103조 등에 의거해 무효를 다툴 여지가 크다.
넷째, 집행부의 '업무상 배임' 가능성을 인지시켜라. 조합장은 조합원의 재산을 보호할 '선관주의의무'가 있다. 시공사의 이익을 위해 자재 하향을 묵인하고 부당한 증액에 앞장선다면 이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증액의 근거 서류를 낱낱이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집행부를 압박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부당한 공사비 증액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원의 '의결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법률적 사안이다. 총회 전에는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통해 결속해 부결을 이끌어내고 만약 가결되더라도 '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이나 '무효확인의 소'를 통해 법리적으로 다퉈야 한다. 조합원의 권리는 침묵하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주상은/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파트너변호사
| 글쓴이 주상은 변호사는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파트너변호사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공인 재개발 재건축 전문변호사이고, 주로 재개발 재건축, 리모델링, 건설 부동산 사건들을 취급해왔다. 대학원에서 민사법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주로 작성하다가 변호사가 된 후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법언어를 쉬운 일상 용어로 풀어 쓰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일반인들이 법에 대해서 가지는 오해를 조금씩 해소해나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