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가상화폐 시장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과 테더가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잇따라 표명하고 있다. 

서클 사장이 방한해 한국은행 총재 및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 데 이어, 테더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한국 시장 진출 의사를 드러냈다.
 
테더·서클 한국 공략 조짐,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지연에 주도권 위협 받아

▲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와 서클이 잇달아 한국 시장에 관심을 드러냈다. 사진은 히스 타버트 서클 사장이 21일 서울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강남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해외 발행사들이 한국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주도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파울로 아르도이노 테더 최고경영자(CEO)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기회가 열려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테더는 세계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큰 달러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발행한 회사다.

아르도이노 CEO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테더는 글로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추가적인 네트워크와 시장을 지원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평가한다”는 등 한국 시장 진출에 관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최근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코인(USDC) 발행사 서클 고위 임원이 직접 한국을 찾아 금융권과 접촉한 데 이어 테더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히스 타버트 서클 사장은 금융지주 회장들 및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과 만남을 가졌다.

한국은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및 거래량이 세계 상위권임에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은 시장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발행사들에 매력적인 기회로 비친다는 시각이 나온다.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은 ‘지니어스법’, 유럽은 ‘MiCA’ 규제 등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한국은 법제화와 세부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지 않았다. 입법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 제도화가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 발행사들이 침투하는 것에 우려를 드러낸다.

스테이블코인은 거래·송금·담보 등 금융 인프라 성격을 가진다. 이에 초기 시장을 선점한 발행사가 장기적으로 지배력을 확보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큰 만큼 해외 발행사가 국내 거래소나 핀테크 회사와 협력해 먼저 자리를 잡으면 뒤늦게 국내 주체가 뛰어들어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처럼 투자 수요보다는 교환 매개 수단으로서 성격이 강할 것으로 예상돼 초기에 누가 네트워크를 장악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

유안타증권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미래’ 보고서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화폐 본연의 역할인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사용되어 실제 상거래에서 법정통화처럼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다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고 재무구조가 탄탄한 결제대행사 등 핀테크 사업자 위주로 초기 도입과 사용 확대를 도모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테더·서클 한국 공략 조짐,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지연에 주도권 위협 받아

▲ 2024년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제출자료 기준)은 107조7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글로벌 전체 시총의 2%대 수준으로 크다. <금융위원회>

아직 관련 법제화가 뚜렷하게 진행되지 않은 만큼 테더와 서클의 관심이 곧바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다만 국내 금융사와 협업 형태로 진출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일부가 해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단순히 금융소비자 보호를 넘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주권과 시장 주도권을 지키는 핵심 인프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서 7월 토론회에서 “지금 논의해야 하는 것은 글로벌 정합성에 부합하면서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이다”며 “미국과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용자 보호와 위험 관리 제도화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같은 토론회에서 김성진 금융위원회 가상자산과장은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하나는 해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국내 이용자 보호 장치가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