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2일 경북 경주시 한수원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 사이 1조5600억 원 규모 이의제기와 관련해서 한 이야기다.
한수원은 올해 2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의 공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비용(약 10억 달러)을 정산해달라고 한전에게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이 사안은 결국 5월6일 최종 협상기한을 넘겼고, 런전국제중재법원(LCIA)를 통한 국제 중재 절차로 넘어갔다.
이 사안을 두고 단순한 비용 분쟁을 넘어 두 에너지 공기업 사이의 뿌리깊은 갈등 문제를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전과 한수원의 갈등은 어제오늘 발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수백억 원 법률비용 삼키는 공기업 간 소송전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정산 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에 중재를 위한 법률 비용만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공공기관이 소위 ‘집안 싸움’에 이정도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향한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한수원과 한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들 사이 사업 협력이 둘 사이의 원만한 합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적 다툼까지 번졌다는 사실 자체가 소위 ‘팀코리아’의 협력 체계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한수원은 한전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완전자회사 ’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완전자회사가 모회사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자회사의 주요 경영 사안, 이사회 구성, 임원 임명 등에서 모회사가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수원과 한전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 한수원은 독립적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장 임명권도 대통령에게 있다. 자회사가 모회사에 뜻에 반한 경영을 하더라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 뿌리깊은 싸움, 20년 묵은 구조개편의 그림자
한수원과 한전의 복잡한 관계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정부는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전의 발전 부문을 분리하고, 한수원을 포함한 발전 자회사를 출범시켰다. 이 결정으로 한수원은 한전의 완전자회사이지만 공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경영과 인사는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회사가 됐다.
이후 한수원은 기술 개발과 사업 운영 전반에서 독립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독자적인 에너지 기업으로 자리잡아 왔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수력발전 정비 업무를 자체적으로 수행하며 기술력을 축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전은 물론 한전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전KPS와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전KPS가 기존에 수력발전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23년 10월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전과 한수원이 관련돼있는 소송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수원은 한전의 또다른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에 2023년 9월 1225억4500만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UAE 원전 공사비 정산 관련 소송은 한전과 한수원이 개별 법인으로 협력해 추진한 첫 대형 해외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이미 올해 1월 사태 해결을 위해 비공식 회동을 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법적 중재에 의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철 사장과 황주호 사장은 한전이 갖는 모회사로서의 위상과 한수원의 독립 경영 사이에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김 사장은 2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팀코리아가 정산해야 할 문제인데 자회사인 한수원이 모회사인 한전을 상대로 클레임을 제기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반면 황 사장은 5월9일 체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전과 한수원의 분쟁이 모자 회사 사이 국제 망신'이라는 얘기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부자 사이에도 돈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이 자리에서 “돈을 받지 않으면 한수원 입장에서는 그것이 배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사장의 임기가 약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수원에 새 사장이 들어선다면 갈등이 더욱 가시화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 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 당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정치인 출신인데, 황 사장의 후임으로 이재명 정부에서 선임한 사장이 온다면 한전과 한수원의 뿌리깊은 갈등에 정치적 문제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황 사장의 임기는 올해 8월까지, 김 사장의 임기는 2026년 9월까지다. 다만 새 정부가 출범한만큼 후임 인선 시점에 따라 황 사장의 재임 기간이 유동적일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법정 싸움으로 무대가 옮겨진 이상, 두 인사가 협상테이블에서 실질적으로 해법을 도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라며 “다만 이 사건의 결과가 앞으로 한전과 한수원의 관계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