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그룹재건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의지의 경영인'으로 불린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정 회장은 이제 HL그룹의 중심축을 자동차 부품 중심의 전통적 산업에서 로봇 등 첨단 신산업으로 이동시켜 사업영역과 고객층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재기를 향한 끈질긴 의지를 바탕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HL그룹의 신산업 진출과 혁신, 로봇 사업의 미래
정몽원 회장은 로봇산업에서 미래 가능성을 엿보고 자회사 HL로보틱스 출범과 함께 주차로봇 전문기업 스탠리로보틱스를 인수하면서 신사업에 고삐를 죄고 있다.
특히 HL그룹의 계열사 HL로보틱스는 실내외를 아우르는 자율주행 로봇 솔루션 개발에 힘쓰며 그동안 각 계열사가 진행해온 자율주행 로봇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24년 10월 창립 62주년 기념사에서 "기존 비즈니스를 토대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할 계획이다"며 "HL로보틱스가 그룹 안에서 신사업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HL그룹은 자율주행 주차로봇 '파키'를 비롯한 첨단 제품들을 글로벌 최대 전자박람회 'CES'에서 선보이며 시장 선점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특히 파키는 세계 최초의 실내 자율주행 주차로봇으로 2024년 CES에서 최고 혁신상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련 시장의 성장세로 성장 기대감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20억 달러 수준이었던 전 세계 주차로봇 시장 규모는 2030년 67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이 이처럼 미래 모빌리티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함에 따라 HL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HL그룹은 신사업의 초기 단계인 만큼 단기간 수익 창출보다 중장기적 기술 고도화와 시장 점유율 확대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 IMF 늪에 빠졌던 HL그룹, 2008년 만도 재인수 성공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서다
HL그룹, 옛 한라그룹이 1997년 겪은 외환위기는 그룹 역사상 최대의 고비였다.
한라그룹은 당시 재계 12위까지 성장했으나 부채비율이 무려 2000%에 달해 극심한 재무취약성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한라중공업 부채가 회생의 불씨를 꺼뜨리고 말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금융시장과 산업 전반의 경색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1997년 말 한라그룹 전체가 부도로 분해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그 뒤 한라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은 매각 혹은 청산 수순을 밟았다. 만도, 한라중공업, 한라펄프제지 등 알짜 기업들이 외국계 투자자나 별도의 기업에 인수되어 대기업집단으로서 위상은 곤두박질쳤다.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구조적 충격 아래 정몽원 회장과 HL그룹은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특히 만도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 재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권토중래하던 정몽원 회장은 2008년 만도기계(현 HL만도)의 재인수를 통해 그룹 재건의 기틀을 닦았다.
IMF 위기 당시 팔려나갔던 만도를 범현대가의 도움과 산업은행, 국민연금 관리공단 등 3사 컨소시엄과 함께 되찾아 온 것은 한라그룹 재건의 신호탄이 된 것이다.
HL그룹은 만도 인수 이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만도는 그룹 전체 매출의 76%를 책임지는 핵심 계열사로 부활했다.
만도는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며,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판교에 첨단 연구소 ‘넥스트M’을 세우고, 레벨4 자율주행 시험운용 성공과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조직 개편을 통해 구조 조정과 연구개발 강화에 집중했다.
정몽원 회장은 특히 안정적 노사관계 구축에도 힘써 2020년에는 김광헌 부사장을 영입해 노사문제를 직접 다루며 위기 돌파를 꾀했다.
◆ 한라그룹의 창업과 성장, 정인영 명예회장의 중공업 도전
HL그룹의 뿌리는 1962년 정인영 명예회장이 설립한 현대양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 국제개발처(AID)를 방문해 차관협상을 진행해 한국기업 최초로 AID 차관 도입에 성공했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중공업'이라는 확신을 갖고 1962년 '5대양 6대주를 넘어 나간다'는 뜻을 담아 현대양행을 설립했다.
그리고 중공업 중심의 꿈을 목표로 우선 기술축적과 기계공업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 1964년 안양기계제작소에서 양식기 생산을 통해 외화 벌이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정 명예회장은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 사회의 기계공업 추세를 탐색하면서 자동차 산업과 중공업이 미래산업을 이끌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미국 포드가 1966년 한국 진출을 위해 시장조사 겸 한국파트너를 물색하러 왔고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었던 정 명예회장은 현대를 한국 측 포드 협상파트너로 만드는 일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현대건설은 자동차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포드의 접촉 물망에 있는 기업이 아니었다.
정 명예회장은 포드 측 조사단이 묵고 있는 조선호텔을 찾아 현대건설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을 내세워 설득했다.
최종적으로 포드와 협력관계 구축을 약속받고 그 해 12월 현대그룹은 자동차회사를 세웠고 1967년 자동차 조립기술 제휴 계약을 맺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코티나'였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이 과정에서 '자동차 산업의 핵심은 부품에 있으니 부품 국산화를 이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결국 정 명예회장은 1970년대 자동차 부품 국산화를 적극 추진하여 안양공장을 브레이크, 스티어링, 히터 등 300여 종의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발돋움시켰다.
자동차 부품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정인영 명예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우리는 항상 20~30년을 내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양식기 생산은 오늘의 도약을 위한 워밍업으로 우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동차 부품 생산라인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강조했던 자동차 부품사업에 대한 열망과 의지는 아직도 HL그룹에서 회자된다.
정 명예회장의 큰 뜻은 1979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정책으로 현대양행의 중공업 사업 부문을 강제로 매각당하면서 주춤한다.
하지만 정인영 회장은 만도기계로 새 출발해 ‘인간은 할 수 있다(Man Do)’는 정신으로 다시 일어섰으며, 1990년대 들어 급성장하는 자동차부품 분야를 중심으로 한라그룹의 재건에 나섰다.
정인영 회장의 ‘재계의 오뚝이’라는 별명과 ‘꿈을 갖고 신념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좌우명은 HL그룹이 오늘날 신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