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이 두 아들의 계열분리도 염두에 두고 승계를 고려하고 있는지 주목된다. <그래픽 씨저널>
이후 박문효 회장은 계열사 중 하나인 맥주병 제조업체 하이트진로산업 등기임원직만 유지한 채 후계구도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박문덕 회장은 경영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박문효 회장의 아들들의 회사인 연암과 송정을 내부거래를 통해 적극적으로 챙겼다. 이 과정에서 조카들의 회사를 계열사로 등록하지 않았다가 적발돼 법적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사정은 그룹 내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일만큼은 막겠다는 박문덕 회장의 의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같은 맥락에서 박 회장은 두 아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자신의 전례를 비춰 보며 분쟁을 막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해놓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서영이앤티에 사업을 몰아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을 두고 두 아들의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전략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박문덕이 형 대신 회사 물려받은 사연
박문덕 회장의 부친인 고 박경복 명예회장은 1969년 조선맥주를 인수했다. 이후 조선맥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맥주 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동양맥주(오비맥주의 전신)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조선맥주는 1993년 출시한 하이트맥주가 대히트를 치면서 오비맥주를 제치고 맥주업계 1위에 올랐다. 이에 탄력을 받아 1998년에는 사명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꿨고, 2005년에는 소주업체인 진로를 인수하면서 국내 주류업계 1위에 올랐다.
박문덕 회장의 형인 박문효 회장은 박 명예회장의 장남으로서 후계구도에서도 앞서 있었다. 그는 조선맥주에서 이사·전무·부사장을 거쳐 1987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1989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박문효 회장은 1991년 사장으로 승진한 박문덕 회장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2001년 박문덕 회장으로 지분 승계가 완료되며 경영권을 완전히 뺏겼다. 박문효 회장은 2001년 가지고 있던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박문덕 회장은 하이트맥주 출시와 회사의 업계 1위 등극, 이후 진로 인수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1등공신으로 평가되며 후계자가 됐다.
당시 박문덕 회장은 업계 2위라는 위치에 안주하고 있던 회사를 바꾸고자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기로 하고, 직원들과 합숙하면서 하이트맥주를 탄생시켰다고 전한다. 또 생산현장 중심의 기업문화를 영업과 마케팅 중심으로 탈바꿈시키고 ‘100% 암반천연수’를 콘셉트로 혁신적인 마케팅을 펼쳐 제품을 1위에 올려놓았다.
다만 하이트진로는 2012년 카스를 내세운 오비맥주에 맥주업계 1위 자리를 다시 내줬고, 지금은 소주 시장에서만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로 맞불을 놓으며 호시탐탐 1위 자리를 노리고 있지만 역전은 이루지 못했다.
박문효 회장 일가는 경영권 경쟁에서 패배한 이후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두 아들 박세진 대표와 박세용 대표가 각각 하이트진로 협력업체인 연암과 송정을 경영하고 있다. 각각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연암은 주류 용기에 붙이는 상표 라벨을, 송정은 인쇄용 그라비아 용지와 라벨지를 각각 생산한다.
박문덕 회장은 연암 및 송정과 꾸준히 거래를 유지하며 조카들을 지원해 왔다. 이는 형인 박문효 회장과의 갈등을 완화하고 형의 가족에 경제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이는 결국 자신의 경영권도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박문덕 회장은 연암과 송정을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지 않고 두 회사를 지원해 왔고 이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이트진로그룹이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연암과 송정 등 친족회사 5곳을 고의로 누락했다는 이유로 2021년 박문덕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문덕 회장은 1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 하이트진로그룹 로고.
박문덕 회장은 형과 갈등을 빚었던 자신의 개인사에 비춰, 혹시 있을지 모를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은 사전에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형제 간 계열분리를 이른 시점에 추진하는 것이다.
계열 분리는 이해관계 충돌을 줄이고 형제가 독립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좋은 방법이다.
서영이앤티가 뷰티사업을 포함해 신사업을 확대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서영이앤티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도 그 사전작업일 가능성이 있다. 서영이앤티는 박태형·박재홍 형제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계열 분리가 용이한 상태다.
만약 계열분리를 추진한다면 그룹의 주 사업인 주류사업과 뷰티 등 그 외 사업을 형제가 나눠가질 가능성이 있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