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뉴욕주 맨해튼에 위치한 JP모간 은행 본부. JP모간은 올해 1월 넷제로은행연합(NZBA)에서 탈퇴했다. <연합뉴스>
핵심 목표로 삼은 ‘파리협정’ 준수도 완화 대상에 올라 있어 글로벌 금융권 전체의 기후대응 수준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관련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국제 금융사들이 가입한 협의체들이 규정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먼저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현지시각) 넷제로은행연합(NZBA)이 그동안 가입 조건이었던 '1.5도 목표 준수 서약' 폐기를 검토하며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5도 목표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합의된 사항을 말한다.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1.5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파리협정 목표로도 불린다.
넷제로은행연합은 파리협정 목표 이행에 부합하도록 은행들의 포트폴리오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목적을 갖고 2021년에 결성된 협의체다. 2025년 3월 기준 44개국 134개 은행이 가입해 있다. 한국에서도 농협, KB, 하나, 신한, 우리 등 5대 금융 그룹과 IBK기업은행이 가입해 있다.
회원사들의 자산 합계는 약 54조 달러(약 7경8543조 원)에 달한다.
글로벌 은행들이 넷제로은행연합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공신력 있는 금융 배출량 감축 실적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뿐만 아니라 상호 협력을 통해 기후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온실가스 관련 규제 및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등에 대비한 공동 대응도 추진하고 있다.
넷제로은행연합이 이번에 규정 개정을 검토하고 있는 이유는 가입해 있던 주요 은행들이 잇따라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말부터는 골드만삭스, JP모간,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주요 은행들이 연이어 탈퇴했다. 올해 1월에는 BMO, CIBC 등 캐나다 주요 은행들도 모두 이탈했다.
6일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 은행도 탈퇴를 결정했다.

▲ 영국 런던에 위치한 HSBC 본부 현판. <연합뉴스>
'넷제로 자산관리자 협의체(NZAM)'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많은 은행들이 은행 연합이 자산운용사 협의체들과 유사하게 규정을 완화하는 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연합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넷제로은행연합에 남아있는 영국 HSBC는 지난달 자사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하향했다. 2030년까지로 계획한 기업 운영 및 공급망 분야 탄소중립을 2050년으로 미뤘다.
HSBC는 2024년 실적 보고서를 통해 "기술 발전 속도, 에너지 믹스 다각화, 기후대응 솔루션을 향한 시장 수요와 고객 선호도의 변화, 정부 리더십과 정책 효율성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스코프3(공급망 내 배출) 분야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속도는 예상보다 크게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기후 대응이 약화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현실성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제임스 바카로 영국 케임브리지 지속가능성 리더십 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넷제로은행연합의 계획은 현재 은행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규정 완화를 통해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 은행들을 더 끌어들여 북미에서 잃어버린 동력을 보완할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던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Gfanz)'은 올해 초 이미 가입 규정을 대폭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은 넷제로은행연합의 상위 협의체인 만큼 넷제로은행연합가 이번에 추진하는 규정 완화도 확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은 당시 공식성명을 통해 "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에 있어 필요한 규모와 속도로 자본을 동원하는 데에 대한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은 전 세계 금융 기관이 이같은 과제를 해결하고 중요한 순간에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확고히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