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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트럼프가 모든 것에 옳았다'는 글귀가 인쇄된 모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과 독일 등 지원 의무를 지고 있는 서방권 선진국들도 잇따라 예산 감축에 나서고 있어 향후 개발도상국들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개도국들은 기후변화에 자체적으로 대응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 서방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향후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2일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최근 기후재원 관련 예산을 삭감한 미국에 뒤따라 서방 선진국들이 연이어 관련 지원을 줄이고 있다.
기후재원은 기후변화에 큰 피해를 받고 있으나 스스로 피해를 복구하고 대책을 세울 능력이 부족한 국가들을 위해 지원되는 기금을 말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미국은 주로 ‘국제개발처(USAID)’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제개발처 직원 2천 명을 전원 해고 또는 휴직 처리하면서 부처 해체를 예고했다. 국제개발처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낭비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여기에 유엔 산하 최대 기후기금 ‘녹색기후기금(GCF)’에 지원하기로 했던 기여금 약 40억 달러(약 5조8천억 원)도 철회했다.
미국의 연이은 기후재원 삭감 조치에 함께 재원 지원 의무를 지고 있던 서방 선진국들도 연이어 지원 축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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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 위치한 총리 관저에서 예산 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타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지만 필요하다고 봤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핵심적인 인도주의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기후변화에도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그동안 2026년까지 116억 파운드(약 21조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글로벌 기후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영국 공공기관 '원조 영향에 관한 독립위원회(ICAI)' 분석에 따르면 이번 삭감으로 해당 재원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으로 평가됐다.
영국 외에도 유럽 선진국 다수가 대외 원조 예산 삭감에 나섰다.
유로뉴스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이 대외 원조 예산을 대폭 감축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유로뉴스는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개발처를 폐지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독일은 최근 총선에서 우파 정당인 기독민주연합이 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기후대응 관련 원조를 앞으로도 계속 줄여나갈 것으로 우려됐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연합 당 대표는 총선 과정에서 "그동안 독일의 경제 정책은 기후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나는 분명히 밝히건데 이것을 바꿀 것이고 반드시 바꿔야만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타임지는 이에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지난 몇 년 동안 기후재원 목표를 초과달성할 정도로 많은 기여를 해온 나라"라며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독일은 그 빈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기대받았는데 이제 독일이 흔들리면 유럽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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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연합 당 대표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분데스탁(연방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레사 앤더슨 '액션에이드 인터내셔널' 기후정의 대표는 클라이밋홈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올해도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1월을 보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인도주의적 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원조를 삭감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재원이 삭감되면 기후피해에 가장 취약한 개도국들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독일 민간연구소 '저먼워치'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입은 직접 피해 규모는 약 4조2천억 달러(약 6006조 원)에 달했다.
기후재해로 인한 사망자도 최소 8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고 피해는 주로 중국, 인도, 필리핀 등 개도국들에서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저먼워치는 여기에 간접 피해 규모까지 따지면 실제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후변화가 계속해서 빨라지고 이상기후가 심각해지는 추세를 고려하면 향후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리나 아딜 저먼워치 기후적응 및 손실피해 정책 고문은 "기후변화 영향은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가장 많이 받는다"며 "이들 국가는 손실과 피해에 적응하고 관리할 재정적, 기술적 역량이 제한돼 있어 이들의 피해를 방지하고 완화하기 위한 국제적 지원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