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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부자들' 스틸이미지. |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왔던 유명한 대사다. 영화가 아무리 현실같아도 따라했다간 곤란하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처럼 인생 ‘종치는’ 수가 있다.
현실이 상상 그 이상일 때 영화의 덕목은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사회고발이나 부정부패, 권력형 비리를 다룬 영화들이 재조명되거나 제작이 봇물로 터져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25일 영화계에 따르면 사회고발영화들이 극장가 흥행의 주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12월 개봉 예정작인 영화 ‘판도라’를 비롯해 내년 상영을 목표로 제작이 한창인 영화들 가운데 사회고발이나 현실비판을 다룬 상업영화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판도라는 박정우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영화 ‘연가시’로 한국형 재난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도라는 원전 폭발사고를 다룬 영화인데 크랭크업 후 1년이 지나도록 개봉일을 못잡다가 12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시국에 발맞춰 개봉기회를 잡은 셈이다.
원전사고란 가상의 재난을 소재로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대규모 재난 앞에서 무능한 대통령, 위기상황에서 작동하지 않는 국가기관의 시스템을 비판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될 수도 있겠다.
12월 개봉하는 이병헌씨 주연의 ‘마스터’도 외양은 범죄액션 영화지만 권력형 비리와 정경유착 등 사회의 이면을 담아 현실을 꼬집는 통쾌함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고발영화들은 현실이 부조리하고 억압될수록 더욱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박근혜 게이트’로 대통령 권력에 얽힌 각종 비리나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데 어디서 본 듯한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때문일 터인데 허구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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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완 감독. |
권력형 비리를 다룬 영화로 ‘부당거래’와 ‘내부자들’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류승완 감독의 2010년작 부당거래는 개봉 당시에도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 시국과 맞물려 다시보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는 지난해 12월 개봉했던 내부자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검찰, 언론, 재벌 등 우리사회 4대 권력의 축이 검은 커넥션을 이루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부당함, 성상납 등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확인하게 한다.
최근작 가운데 ‘아수라’도 악당이 판을 치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다. 피칠갑을 두른 과도한 묘사와 진부한 스토리라인에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권력과 악의 상관관계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현재 촬영이 한창인 ‘택시운전사’ ‘재심’ ‘V.I,P’ ‘특별시민’ ‘제5열’ 등도 내년 줄줄이 개봉할 것으로 보인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송강호 류준열씨 등이 출연하는 것만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일급비밀은 군사기밀에 얽힌 군 내부 비리 사건을, 재심은 2000년 전북 익산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특별시민은 대한민국 최초로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변종구(최민식)를 통해 선거의 치열함과 비열함 등 정치의 양면성을 다룬다.
V.I.P.는 북한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국정원이 선거에서 댓글 아르바이트로 동원되는 장면 등 현 시국과 꼭닮은 에피소드들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권 말기 때 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개봉해 인기를 끌었다"며 "어수선한 시국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흥행세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자들은 지난해 청불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것만큼이나 화제성도 대단했고 유행어가 된 명대사들도 참 많았다.
앞에서 언급한 ‘민중은 개돼지’ 운운 외에도 “영화가 끝나면 알겠죠. 지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다는 걸”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까” “여 썰고, 여기도 썰고” 등등.
그런데 개봉 1년이 가까워오는 요즘 영화를 다시 보니 최고의 명대사는 우민호 감독이 넣은 엔딩 크레딧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속 내용은 허구이며 비슷한 내용은 우연의 일치입니다”란 대사 아닌 대사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