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면세점이 중국 단체 관광객(유커)가 줄어들며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사진은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서 유커들이 쇼핑하는 모습. <롯데면세점>
국내외 관광객의 소비 습관이 바뀌며 면세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는 만큼 결국 버틸 체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방위적 군살 빼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3일 유통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이 김주남 전 대표를 대신해 김동하 전무를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를 선임한 것을 두고 새 대표에게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주문한 성격의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주남 전 대표는 1995년 롯데면세점에 입사한 이후 제주점장, 마케팅 팀장, 상품전략팀장, 한국사업본부장 등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면세점 업계에서 30년가량 경력을 쌓아온 롯데그룹의 ‘면세 전문가’로 평가된다.
오랜 기간 롯데그룹의 면세 사업에 몸담아온 김주남 전 대표를 2년 만에 교체했다는 것은 롯데면세점의 대대적 변화가 불가피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롯데면세점 지휘봉을 잡은 김동하 대표는 김주남 전 대표와 다른 길을 걸었다. 롯데그룹의 다양한 계열사에서 전략, 정책, 조직문화 등을 다룬 인물이라 면세 전문가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온 '혁신 전문가'라는 평가를 롯데그룹 안팎에서 받고 있다.
이는 김동하 대표가 앞으로 롯데면세점의 비효율 개선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실제 롯데그룹은 롯데면세점이 소속된 호텔롯데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업황 회복이 더딘 면세 부문부터 군살빼기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롯데그룹은 11월28일 정기 임원인사 발표 당일 여의도 교직원공제회에서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 설명회(IR)를 열고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면세사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해외에서 운영 중인 면세점 가운데 경영 상태가 부실한 점포의 철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움직임도 바로 나타났다. 롯데면세점은 11월29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운영해온 쇼룸 ‘나우인명동’ 운영 종료를 발표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10월 나우인명동의 전신인 LDF하우스 운영을 위해 해당 공간을 2년 동안 임차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기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투자금액 대비 홍보 효과가 미미하다는 판단 아래 이뤄진 조치로 파악된다.
김동하 대표 체제에서 이런 흐름이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국내 주요 면세업체 가운데 롯데면세점은 가장 많은 18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른 고정비 부담도 다른 면세점기업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롯데면세점은 현재 소공점, 월드타워점, 부산점 등 국내에서 점포 7개를 운영하고 있다. 경쟁기업인 신라면세점은 3개, 신세계면세점은 4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시내면세점의 상황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둔화로 시내 면세점 매출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부진한 점포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증권가에서 꾸준히 나온다.
부진 점포 철수에 따른 인력 조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면세점은 8월 한 차례 희망퇴직을 진행받았는데 추가 희망퇴직을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 김동하 롯데면세점 신임 대표이사.
롯데면세점은 면세업계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6월부터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해왔다.
먼저 인력 구조조정 및 조직 슬림화를 통한 비용절감 작업을 추진했다.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사업 규모에 맞게 임원 수를 조정했으며 임원 급여를 20% 삭감했다. 기존 3본부 체제를 1본부로 축소해 의사결정 과정을 간소화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잠실 월드타워점 매장 면적 축소, 업무추진비 삭감, 근무기강 강화 등의 조치를 통해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업계에서는 롯데면세점의 이러한 방향성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조치로 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면세업계는 전반적인 불황과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의 부재로 인해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특히 입국객 수가 거의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구매 인원과 매출이 줄어드는 점이 주요 문제로 지적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누적 한국 입국객수는 3802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97% 수준까지 회복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면세점 구매인원은 2376만 명, 매출은 11조9천억 원으로 2019년 대비 각각 59%에 불과한 수치다.
입국객 수 증가에도 매출이 부진한 주요 원인으로는 객단가가 높은 중국 단체 관광객 대신 개별 관광객 비중이 높아진 점이 꼽힌다. 여기에 따이궁(보따리상)에게 송객수수료를 지급할 여력마저 부족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롯데면세점 역시 이러한 부진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는 올해 3분기 영업손실 460억 원을 기록했다. 희망퇴직 비용 등 일회성 비용 160억 원이 반영된 것으로 1·2분기에 이어 3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봤다. 올해 누적 영업손실은 922억 원에 달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기업투자자 대상 설명회에서 부실 점포 정리 등 점포 효율화 전략의 가능성이 언급된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점포는 아직까지 없다”며 “신임 대표이사가 취임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방향성을 뚜렷하게 알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동하 신임 대표는 1970년생으로 동국대학교 산업공학부를 졸업했다. 1997년 롯데제과에 입사해 생산관리팀과 경영혁신팀을 거쳤다. 이후 롯데정책본부 개선실, 롯데슈퍼 전략혁신부문장, 롯데슈퍼 경영지원부문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에는 롯데지주 기업문화팀장과 업무지원팀장을 맡았으며 올해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전무로 승진하면서 동시에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