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중동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당국자들을 만나 사업협력을 논의하고 현지 임직원을 격려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이 회장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유독 중동 관련 사안에서는 적극적 행보를 보인다.
중동이 인구 6억 명의 거대 시장인 데다 CJ그룹의 사업 확장 방향과도 접점이 많다는 점은 이 회장이 거듭 눈길을 주는 이유로 꼽힌다.
25일 재계 안팎에 따르면 이 회장의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은 중동 지역을 중시하는 이 회장의 경영 기조를 반영하는 행보로 읽힌다.
이 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출장길에 오른 것이 대외적으로 발표된 것은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이 회장은 4~6일 사우디아라비아에 방문해 수도 리야드에서 문화부, 관광부, 엔터테인먼트청(GEA) 등 문화·관광 분야 당국 수장 등을 잇달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리야드 공항 통합물류특구에 건설 중인 CJ대한통운 글로벌권역물류센터(GDC)를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은 주로 문화 분야 협력을 다지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만난 당국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예술·관광 산업을 주도하는 인사들이다.
CJ그룹에서는
김홍기 CJ 대표이사,
윤상현 CJENM 대표이사, 정종환 CJENM 콘텐츠·글로벌사업 총괄 등이 대동했다. 정 총괄은 이 회장의 사위이기도 하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이 중동 관련 사안에서는 발 벗고 나서는 배경에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동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이 회장이 4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아흐메드 알 카팁 사우디아라비아 관광부 장관(오른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CJ > |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가개발계획 ‘비전 2030’을 앞세워 엔터테인먼트와 관광 등 소프트파워를 육성하려 하는 만큼 이 회장도 협력의 접점을 찾으며 CJ그룹의 문화사업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재계에서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오너경영자로 손꼽힌다. 대통령이 주최하는 그룹 총수 간담회나 범삼성가의 경조사 등 가족행사 위주로 참석하고 그 외에는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직접 중동 출장에 나선 것은 그만큼 그가 중동 지역을 그룹의 미래 비전에서 중요한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2022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에 왔을 때도 빈 살만 왕세자를 직접 만났다.
이 회장이 중동 지역을 눈 여겨 보는 일차적 이유로는 소비시장으로서 잠재력을 꼽을 수 있다.
산유국이 많은 중동 지역 특성상 축적된 자본이 소비시장으로 흘러갈 여지가 큰 데다 중동은 그 자체로도 매우 큰 소비시장이기도 하다. 메나(중동·북아프리카)로 일컬어지는 광범위한 중동 지역의 인구는 약 6억 명에 이른다.
CJ그룹으로서는 내수 소비재 중심의 사업구조의 제약을 타파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시기인 만큼 중동은 성장 잠재력이 큰 매력적 시장일 수 있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오른쪽 위)이 4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하메드 빈 모함마드 파예즈 사우디 문화부 차관(왼쪽 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CJ > |
이 회장은 각 계열사별로 중동 지역의 사업기반을 다지는 기초 작업들을 일찍부터 진행해왔다.
CJENM은 2022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와 협약을 맺고 콘텐츠 사업 교류와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 협약에 따라 그 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K-팝 축제인 케이콘이 열렸다.
중동에서도 K-콘텐츠들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는 만큼 CJ그룹이 중동에서 문화사업을 확대할 여력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함께 진행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2023년 기준)를 보면 이집트(67.6%)와 사우디아라비아(65.1%) 등 중동 국가들은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응답 비중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식품사업을 담당하는 CJ제일제당은 할랄 사업을 지속 확대하며 중동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곳에 식품사업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할랄 인증을 취득하기 위한 생산설비를 마련한 뒤 햇반, 김, 김치에서 설탕, 밀가루 등 100여 개에 이르는 할랄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동남아시아에 할랄 생산거점을 구축한 뒤 그 외 국가로 수출하는 이른바 ‘C2C(Country to Country)’ 전략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재 할랄 식품 상당수는 베트남 키즈나공장의 할랄 생산설비를 통해 생산돼 판매되고 있다.
물류 계열사 CJ대한통운도 중동에서 사업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이 회장이 이번 출장길에 방문했던 글로벌권역물류센터는 올해 완공돼 고객사인 ‘아이허브’ 제품을 인근 나라에 배송하는 기지로 운영될 예정이다. 아이허브는 건강기능식품 온라인몰을 운영하는 곳이다.
중동은 자체적으로도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는 물류 시장일뿐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초국경택배(CBE) 사업을 확장할 발판이 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동은 도시개발과 사회기반시설 구축, 생산시설 건설 등이 많이 진행되고 있어 이에 수반하는 중량물 운송 수요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6월부터 10개월게 걸쳐 석유정제시설, 건설자재 등 대규모 설비들의 물류를 수행하며 무게 110만 톤 규모의 중량물을 운송하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CJ그룹은 중동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현지 고위급 당국자와 친분도 쌓아나가고 있다.
이번 이 회장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도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재계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그룹 총수를 초청한 사례는 극히 드문 일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CJ그룹의 문화사업 역량을 높이 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회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산업 성장 가능성과 깊이를 확인하고 감명받았다”며 “엔터테인먼트, 음악 등 CJ그룹의 문화 산업 노하우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 자원, 잠재력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