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탈원전을 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이라는 건 포기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국내 산업계 안팎은 물론 정치권까지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원전이 대통령과 정부의 뜻대로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가 짚어 본다.
①원전이 제 역할 할까? 넘어야 할 과제들 '험준'
②라이벌 지목된 대만 미국 독일, 원전과 이별 중
③송전망 확충도 험난, 한전 재정난과 주민 수용성 '숙제'
④‘화장실 없는 아파트’ 원전, 꽉 막힌 방폐장 확보
⑤원전이 만든 에너지로 생산된 반도체, 애플 MS에 팔릴까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대점검] ‘화장실 없는 아파트’ 원전, 꽉 막힌 방폐장 확보

▲ 2023년 11월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로 열렸다. 원전을 둘러싼 여야 갈등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특별법안은 2024년 1월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을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는 중요하고 시급한 선결 과제로 꼽힌다.

원전 가동에 따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 임시 저장시설 밖에 없는데다 그나마도 2030년경에 저장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를 위한 국회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관련한 특별법안 3건이 소관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현재 계류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법안 가운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2021년 9월 처음 제안됐다.

이후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2022년 8월에 각각 제출됐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놓고 국회에서 2년 넘게 논의가 이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제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련 특별법안이 처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야가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 왔으나 저장시설의 용량 설정을 원전 수명을 기준으로 할지 원전의 계속 운전을 전제로 할지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좀처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관련한 특별법안 처리가 난항을 보이자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존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의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별도의 입법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다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과 관련된 여야의 시각차가 원전과 에너지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차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떤 형태로든 관련 법안의 처리는 험난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열린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법안의 협의를 위원회 내에서 진행하기 어렵다고 보고 여야 지도부에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여야 지도부로 공이 넘어갔어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줄 법안을 처리하는 데는 여야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결국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련 법안들은 모두 자동 폐기될 가능이 커 보인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올해 4월 총선 때까지 처리되지 못하면 ‘회기계속의 원칙’에 따라 폐기된다. 헌법 제51조는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회기 중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는 폐기되지는 않으나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에 따라서는 폐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대점검] ‘화장실 없는 아파트’ 원전, 꽉 막힌 방폐장 확보

▲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의 표층처분시설 공사 모습. 국내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한 곳 운영되고 있으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은 없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는 원전 확대와 관계 없이 이미 가동하고 있는 원전만을 고려하더라도 신속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현재 국내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만 경주에 한 곳이 마련돼 있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은 없다. 원전 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각 원전 내 임시시설에 보관 중이나 2030년께에는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방사성폐기물은 오염도에 따라 크게 작업자가 사용한 의복, 장갑 등 오염도가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 같은 오염도 높은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산업부는 지난해 2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의 포화시점은 한빛원전 2030년, 한울원전 2031년, 고리원전 2032년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2021년 12월 전망 대비 1~2년 포화시점이 빨라지는 단축되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반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는 3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질학적 검토 등 부지 선정부터 주민수용성 확보, 저장시설 건설 등 거쳐야 할 단계 하나하나가 녹록치 않다.

정부는 1980년대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현재까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22년 7월에는 2060년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운영을 시작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면서 원전의 가동 중단, 기존 임시 저장시설의 영구화 등 우려가 커지자 신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원자력학회는 19일 성명을 통해 “제21대 국회 회기 내에 조건 없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원자력학회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특별법은 부지선정을 위한 절차나 지역지원만을 담고 있을 뿐 친원전이나 탈원전을 둘러싼 어떤 정치적 고려나 판단도 포함돼 있지 않다"며 "정파적 문제가 아니라 당장 민생의 문제이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사”라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