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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주역 김진선 조직위원장이 갑작스레 사퇴했다. 삼수 끝에 올림픽을 유치한 데다 위원장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상황이어서 그의 사퇴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정부와 계속되는 엇박자에 한계를 느껴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타의에 의한 사퇴라는 분석도 강력하게 제기된다. 조직위가 지난 6월 이후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었고, 조직위 안팎에서 김 위원장이 현 정권 실세와 충돌하고 있다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1일 "이 엄중한 시기에 새로운 리더십과 보강된 시스템으로 조직위원회를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쭉 해왔고 이것이 지금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이유"라며 사퇴했다.
김 위원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주역이다. 그는 32~34대 강원도지사로 재직하며 1999년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썼다. 이후 두 차례 고배를 마셨으나 2011년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김 위원장은 2011년 11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해 10월 위원장을 연임했다. 그런데 내년 10월까지 임기가 약 1년 3개월 남은 상황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사퇴 발언으로 미뤄볼 때 김 위원장이 사퇴한 배경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엇박자를 계속 내면서 리더십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4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곽영진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새 사무총장 겸 기획행정부위원장에 부임했다. 사무총장 자리를 빼앗긴 문동후 대회운영부위원장은 5월 사표를 냈고 지난 10일 사표가 수리됐다.
문동후 전 부위원장은 서울아시안게임 경기국 주무과장, 서울올림픽 경기국장,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 등을 지낸 체육계 인사다. 체육계 인사를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로 교체한 것은 정부의 입김이 조직위에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 3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입찰을 하루 앞두고 강원도의 요청으로 입찰을 18일로 연기했다. 5월 이후 네 번째 연기였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의 의견차이 때문이다.
강원도는 애초 930억 원을 들여 경기장을 짓고 올림픽을 치른 뒤 이를 워터파크로 리모델링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강원도에 이미 워터파크가 7개나 있는 만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뒤늦게 제동을 걸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면 재설계를 요구했고 강원도는 부분 설계 변경으로 맞서다 지난 15일 재설계로 합의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대회 특별법’과 ‘보조금 관리법’에 따라 조직위원회는 경기장을 짓는 데 쓰이는 비용의 75%를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돈줄을 쥐고 있는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다. 조직위원회는 대회 준비를 위해 국제기구에서 돈을 빌릴 때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예산집행권을 쥔 문화체육관광부의 뜻을 따르는 편이 양쪽 모두 편한 길이지만 문제는 재설계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경기장 재설계에 걸리는 시간은 통상 6개 월이므로 2015년 1월에야 설계가 완료된다.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을 건설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3년이므로 2018년 1월에야 경기장이 완성된다.
그런데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겸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가 2017년 2월에 열린다. 그렇다면 2년 안에 경기장을 지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대한 앞당겨도 2년6월은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원도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테스트 이벤트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며 “이 대회를 개최하지 않을 경우 국가 신뢰도가 추락해 올림픽 준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므로 당초 설계대로 바로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선 위원장 역시 “과거처럼 매일 24시간 내내 공사를 할 수 없다”며 “정말 고민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재설계를 해 공사를 늦어지게 만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리더십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고 체육계는 입을 모은다.
김 위원장의 사퇴설은 지난 주부터 흘러나왔다. 지난 10일 문동후 조직위 부위원장의 사표가 수리됐고, 지난 17일 열린 강릉빙상경기장 건린공사 기공식에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으면서 사퇴소문은 더욱 확대됐다.
감사원 특별감사가 김 위원장의 사퇴 결심을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달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가사 이뤄지면서 감사원의 칼끝이 김 위원장을 겨누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런 분석은 김 위원장이 박근혜 정부 들어 주요 자리에 끊임없이 후보로 이름이 거명되면서 집중적인 견제를 받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과 맞물려 더욱 증폭됐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으로 임명되고 국무총리, 비서실장 후보자로도 끊임없이 이름이 올랐다.
후임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거론됐지만 조 회장은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 정상화를 비롯한 그룹 재무구조개선 등 업무가 산적해 조직위원장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당 기간 동안 조직위의 행정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