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 자체 인공지능(AI) 서버용 프로세서를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TSMC와 미디어텍 등 대만 기업에 의존을 높이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구글이 인공지능 서버에 활용하는 자체 설계 반도체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과정에서 미디어텍과 TSMC 등 대만 반도체기업과 협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시장에서 대안을 찾고 있는 대형 IT기업들이 구글을 뒤따라 대만 업체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대만 경제일보에 따르면 구글은 내년 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 상용화를 위해 미디어텍과 손을 잡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 프로세서와 함께 사용돼 고속 데이터 전송을 돕는 직렬/병렬 변환기(SerDes)를 미디어텍에서 수급해 활용하는 계획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반도체는 TSMC의 5나노 미세공정을 활용해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주력상품 ‘H100’과 동일한 공정의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는 병렬식 구조로 연산을 진행하는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 구글의 인공지능 반도체는 처음부터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 연산을 염두에 두고 개발돼 성능과 전력 효율 등 측면에서 장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일보는 미디어텍이 인공지능 분야에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고 그동안 스마트폰 프로세서와 같은 상품에 관련 기술을 꾸준히 적용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모델(LLM) 기반의 기술도 갖추고 있어 구글이 챗GPT의 대항마로 내세운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바드’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경제일보는 “구글이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미디어텍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근거”라며 “앞으로 반도체사업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고 바라봤다.
구글이 엔비디아나 AMD의 인공지능 반도체를 사들여 활용하는 대신 자체 개발에 나선 이유는 서버 투자 비용에 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대형 IT기업들이 잇따라 인공지능 서버 투자에 나서면서 GPU 기반 인공지능 프로세서의 수요 급증과 품귀현상을 이끌어 가격도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를 예상해 수 년 전부터 선제적으로 자체 인공지능 프로세서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르면 내년부터 서버 투자에 직접 설계한 반도체를 활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올해 말부터 구글 인공지능 반도체 시범 생산을 시작하고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체계를 구축해 공급을 시작하기로 했다.
구글이 이처럼 대만 반도체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는 일은 세계 반도체시장에 중요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이 구글을 뒤따라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 기업들과 손을 잡으려 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 구글이 공개한 자체 설계 프로세서 'TPU v4' 이미지. <구글> |
TSMC는 엔비디아와 AMD의 인공지능 반도체를 사실상 전량 수주해 위탁생산하는 데 이어 구글과 손을 잡으며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증명하고 있다.
자연히 다른 빅테크 기업에서 설계한 반도체도 파운드리 미세공정을 활용해 공급하며 급성장하는 인공지능 반도체시장에서 영향력을 더욱 키우게 될 수 있다.
반도체사업에 경험이 많지 않은 빅테크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분야에서 충분히 역량을 검증받은 파운드리업체를 활용하는 일이 리스크를 낮추는 데 기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TSMC의 최대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기술력에서 대등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증가에도 주요 고객사의 위탁생산 사례를 확보하지 못 해 다소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자칫하면 모바일 반도체를 넘어 최대 파운드리 수요처로 자리잡고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진입 기회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모바일 프로세서 사업에서도 미디어텍을 주요 경쟁사 가운데 하나로 두고 있었다.
미디어텍이 구글을 통해 반도체사업의 영역을 인공지능까지 확장하며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의 자체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모바일 이후 시대로 넘어가는 데 다소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TSMC와 미디어텍은 모바일 반도체사업에서 장기간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강력한 동맹을 구축해 대만 시스템반도체 산업 발전에 꾸준히 기여해 왔다.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의 반도체시장 진입을 계기로 이들의 역량이 더욱 돋보일 계기를 만들며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 판도가 대만을 중심으로 더욱 굳어지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전까지 구글은 자체 브랜드 ‘픽셀’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프로세서에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설계 및 제조 기술을 모두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 반도체에서 삼성전자 대신 대만과 손을 잡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로 꼽힌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