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손정의 협력 '결실' 맺나, ARM 반도체 개발에 삼성전자 역할 주목

▲ ARM이 자체 반도체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주요 시스템반도체 설계기업에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ARM이 자체 반도체 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및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오랜 친분과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설계·제조 역량을 고려한다면 ARM이 사업 진출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반도체를 시장에 선보이고 고객사에 공급하며 본격적으로 모바일 반도체시장에 직접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ARM은 모바일 기기와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저전력 시스템반도체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와 관련한 기술 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퀄컴의 모바일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개발을 총괄했던 고위 임원이 2월부터 ARM에 합류해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ARM이 핵심 고객사인 퀄컴의 주력 사업으로 자리잡은 모바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뛰어들면서 협력사에서 경쟁 상대로 입지를 바꿔내고 있는 셈이다.

애플과 삼성전자, 퀄컴과 미디어텍 등 주요 반도체 설계기업에 모두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사업모델을 갖춘 ARM이 자체 반도체 출시를 검토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퀄컴과 ARM은 현재 다소 불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퀄컴이 ARM의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 새 아키텍쳐(반도체 설계) 기반의 모바일 프로세서 출시를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ARM은 퀄컴이 활용하려는 새 반도체 아키텍쳐가 자사의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퀄컴과 라이선스 계약을 계속 유지하려는 목적을 앞세우고 있다.

한편으로 ARM은 퀄컴 등 고객사에서 거두는 기술 라이선스 비용을 대폭 높이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모바일 프로세서 아키텍쳐 분야에서 95%에 이르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고려하면 퀄컴을 비롯한 주요 고객사가 ARM의 기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RM이 자사 제품으로 퀄컴과 맞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소송전과 기술 사용료 논의에 모두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하반기 나스닥시장 상장을 목표로 둔 ARM이 기업가치를 유리하게 인정받으려면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도 자체 반도체 출시에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ARM이 단순히 고객사에서 라이선스 비용을 거두는 것을 넘어 자체 반도체로 수익 기반을 다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투자자에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심각한 재무구조 악화를 겪고 있어 자회사인 ARM의 상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ARM의 기업가치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ARM과 협력할 반도체 제조사로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거론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은 이미 두 기업과 함께 자체 설계 반도체의 생산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재용 손정의 협력 '결실' 맺나, ARM 반도체 개발에 삼성전자 역할 주목

▲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 안내 이미지.

다만 주요 반도체 고객사들과 관계 등을 고려한다면 TSMC보다 삼성전자가 ARM의 자체 반도체 개발 및 제조 협력사로 낙점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ARM의 자체 모바일 반도체 진출은 퀄컴과 미디어텍 등 기존 모바일 프로세서 전문기업에 상당한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은 아직 자체 설계 반도체를 시장에 판매할 계획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주요 고객사들의 반발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TSMC가 이런 상황에도 ARM과 반도체 제조에 협력한다면 파운드리 주요 고객사인 퀄컴과 미디어텍 등의 위탁생산 물량을 수주하는 데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들 기업의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관계 악화에 따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삼성전자가 TSMC와 달리 직접 모바일 반도체를 설계해 자체 브랜드로 선보이고 있다는 점도 ARM이 첫 반도체 출시와 관련해 도움을 받으려 할 만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재용 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깊은 친분도 두 기업의 협력 가능성을 높인다. 이들은 지난해 하반기에도 한국에서 회동을 진행하며 삼성전자와 ARM 사이 기술 및 사업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당시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일부 매입할 가능성 등이 거론됐지만 아직 당시 진행된 회담에 따른 결과는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이 자리에서 ARM의 자체 반도체 출시 계획에 관련한 기술 및 제조 협력 방안이 논의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삼성전자도 현재 ARM에 반도체 설계 기술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 관계를 강화하는 일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ARM이 직접 반도체를 출시해 퀄컴과 미디어텍 등의 경쟁사로 등장한다면 반도체 업계 전반에 공포심리를 불러올 수 있다”며 “다만 직접 경쟁력 있는 반도체를 설계해 내놓기까지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