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사진)가 티몬, 인터파크커머스에 이어 위메프까지 인수하며 1세대 플랫폼들로 연합군을 꾸리고 있다. 이커머스 판을 재편하려는 모양새가 짙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사실 큐텐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닦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
[비즈니스포스트]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가 이커머스 판에서 매우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 대표는 큐텐을 통해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한 지 1주일 만에 위메프도 품에 안았다. 구 대표가 티몬부터 시작해 1세대 플랫폼들을 모두 아우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7개월이다.
‘구영배발 이커머스 시장 재편’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의구심도 여전하다. 시장에서 입지를 많이 상실한 플랫폼들로 연합군을 꾸려봐야 시장 판도를 뒤바꾸기는 힘들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힘이 세다.
사실 구 대표가 이커머스 재편보다는 큐텐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성장에 더 관심이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6일 큐텐이 위메프를 전격적으로 인수한 것은 사실상 큐텐이 ‘1세대 플랫폼’들을 아우르는 연합군을 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큐텐이 이날 경영권을 인수한 위메프는 2010년대 초반 국내에 소셜커머스 열풍을 일으킨 3인방 가운데 하나다.
창립 시기로 보면 티몬과 쿠팡에 이은 막내이지만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10만 장 판매, T.G.I.F의 인기 스테이크 메뉴 10만 장 판매 등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단일 아이템을 10만 장씩 판매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쿠팡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사이 위메프는 2010년 중반부터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 3%대 안팎을 보일 정도로 영향력이 쪼그라들었다.
큐텐이 위메프를 인수한 것은 쿠팡을 제외한 ‘1세대 소셜커머스 플랫폼’ 가운데 2개 기업을 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쟁자 관계였던 티몬과 위메프가 큐텐이라는 한 지붕 아래 놓인 것은 이 회사들이 탄생한 지 13년 만의 일이다.
큐텐은 불과 1주일 전 인터파크의 쇼핑사업부 및 도서사업부를 전신으로 하는 인터파크커머스도 사들였다. 인터파크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개척한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구분된다.
사실상 구영배 대표가 이커머스와 소셜커머스 시장을 개척한 1세대 플랫폼들을 한 데 품은 모양새라고 볼 수 있다.
이커머스업계는 구 대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실 그의 행보만 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재편해보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 각 플랫폼으로 각개전투를 해서는 사실상 승부를 보기 어렵다.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3%대, 3%대, 1%대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들을 한 데 모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플랫폼들이 연합체를 형성한다면 단숨에 점유율이 최소 7%에서 많게는 9%대까지 높아진다. 시장에서 반전을 시도하기에 적지 않은 수치다.
단순히 보면 구매력부터 키울 수 있다. 모든 유통업체들은 거래액을 키워 이를 기반으로 구매력(바잉 파워)을 높이고 이에 힘입어 다시 거래액을 높여 몸집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에는 각 플랫폼의 몸집이 너무 작다 보니 구매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여러 플랫폼이 한 데 어우러진 만큼 제조사와 판매 협상에서 조금이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그러나 큐텐이 품에 안은 각 플랫폼들을 세세히 살펴보면 이커머스 판을 뒤흔들만 한 강력한 무기를 쥐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의견도 많다.
시장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데는 모두 이유가 있는데 이들을 한 데 묶는 것만으로는 시장 판도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플랫폼의 물리적 결합만으로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신세계그룹이 SSG닷컴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G마켓을 인수했지만 그 성과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증명되기도 한다.
현재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체제로 빠르게 굳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SSG닷컴과 G마켓, 11번가 등 전통의 강호들도 큐텐의 ‘1세대 플랫폼 연합군’에 쉽사리 자리를 내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구 대표가 이커머스 시장 재편이 아닌 다른 목적에서 여러 플랫폼을 인수했다고 볼 여지도 생긴다. 구 대표가 이커머스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구 대표가 큐텐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성장을 염두에 두고 플랫폼 연합군을 꾸리고 있다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큐익스프레스는 구 대표가 만든 국내 1세대 국경 간 거래(크로스보더) 전문 물류기업으로 2009년 설립됐다. 구 대표는 동남아시아 기반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의 성장을 위한 자체 물류 시스템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큐익스프레스에 힘을 실어왔다.
큐익스프레스는 해외 6개 나라에서 회원 2천만 명을 확보하고 있는 오픈마켓 큐텐의 물량을 도맡으며 성장하다가 2019년 아마존, 이베이재팬 등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의 물량까지 확보하며 급격히 몸집을 키웠다.
2017년만 하더라도 매출 521억 원, 물동량 1076만 박스에 불과했던 큐익스프레스는 2020년에 매출 1494억 원, 물동량 3286만 박스를 달성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이런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2020년부터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에도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을 위한 심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투자열기가 식어버린 금융시장의 상황을 볼 때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은 우선순위에서는 밀린 것으로 여겨진다.
구 대표로서는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에 공을 들이기보다 차라리 큐익스프레스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들을 인수해 회사의 기업가치를 높일 기반을 닦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일 수도 있다.
과거 큐익스프레스의 상장 움직임이 보일 당시 시장에서 거론된 큐익스프레스의 기업가치는 1조 원 수준이었다.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더 높은 몸값을 받는 것도 가능한 만큼 우선은 국내 1세대 플랫폼 연합군의 물량을 큐익스프레스에 몰아 몸집을 키우는 작업에 착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큐텐이 티몬을 인수한 뒤 가장 힘을 쏟는 지점도 큐익스프레스와 티몬의 시너지 창출이다.
티몬은 1월 큐익스프레스와 협업해 입점 파트너의 배송 경쟁력을 강화하는 통합 풀필먼트 서비스 Qx프라임을 선보였다. 3월에는 Qx프라임 전용관을 만들어 오후 2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하기도 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