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지구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회복 불가능한 혼란의 정점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옥행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7일(현지시각)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정상회의 자리였다.
“굉장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긴장이 됩니다. 아마존, MS 등 고객사들의 요구가 높아 재생에너지로 (반도체)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전력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줄어들면 확보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송두근 부사장의 말이다. 10월20일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국제콘퍼런스 자리에서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정부의 에너지믹스 전략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였다.
정부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라 당초 30.2%였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21.6%로 낮춘 바 있다.
▲ RE100에 가입한 삼성전자는 미국 중국 유럽 사업장에선 2020년에 재생에너지비율 100% 달성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 비율을 8.8% 채우는 데에 그쳤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연합뉴스>
탄소전쟁이 시작됐다. 선두에 선 이들은 전 지구를 위기에 빠트린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사실상 ‘탄소를 앞세운 경제전쟁’이다.
가장 앞에 선 건 시장 리더들이다. 애플, MS 등 글로벌기업들은 자사 운영 기준으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한다. 또 공급망 내 주요 제조사들에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며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재생에너지 공급망이 약한 국가에 자리 잡은 기업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허들로 작용한다. 고위관료 출신 행정학자가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단가를 보면 미국이 한국의 절반입니다. 탄소를 앞세운 경제전쟁에서 미국은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의 재생에너지 가격은 미국보다 높다. 특히 태양광 가격은 두 배 넘게 비싸다.
한국무역협회가 2021년에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1메가와트시(MWh) 당 44달러다. 이 가격이 한국은 95.6달러다. 중국은 50.7달러, 인도는 35.5달러다. 발전용 가격 기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반 수출업체들은 RE100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예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미국 중국 유럽 사업장에선 이미 2020년에 재생에너지비율을 100% 달성했지만 국내에선 재생에너지를 8.8%밖에 조달하지 못했다. 재생에너지 생산량 자체가 적은 탓이다.
탄소전쟁의 그 다음 전선엔 유럽연합, 미국 등 선진국 정부들이 서 있다. 유럽연합(EU)는 2023년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시범 운영한 뒤 2026년부터 전면 도입한다.
미국 상원은 청정경쟁법안(CCA, Clean Competition Act)을 올해 6월 발의했다. 이 법안은 2024년부터 석유화학제품 등 12개 수입품에 온실가스 배출 1톤당 55달러를 부과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청정경쟁법안은 수입품이 배출한 탄소의 무게가 기준이라는 점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법안도 관세 장벽을 통해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입품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동명의 저서를 통해 2015년부터 ‘탄소전쟁’을 경고한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당시보다 지금은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무역전쟁이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선진국이 신흥국을 견제할 무역장벽으로 탄소만큼 내세우기 좋은 것이 없다”며 “명분도 있고 저탄소 기술 준비도 되어 있다”고 말했다.
“참 겁이 납니다.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로 보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철강을 전기로로 전환한 후 수소 제철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해나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탄소경쟁력은 순식간에 바뀔 것입니다. 당장 준비해야 합니다.”
▲ 올해 9월 포항제철소 모든 용광로를 꺼지게 한 2022년 제11호 태풍 ‘힌남노’ 역시 기후변화의 산물이었다. 사진은 포항제철소 3후판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포스코>
중국 정부의 자신감은 상당히 높다. 10월20일 중국 외교부 기자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에너지 위기로 많은 유럽국가들이 석탄을 쓰며 탄소 감축 계획을 미루고 있는데 그래도 중국은 녹색과 저탄소 전환에 전념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여전히 확고히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설치 용량은 세계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며 "풍력, 태양광, 수력, 바이오매스 설치용량 면에선 세계 1위”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무역장벽, 중국의 추격보다 무서운 전선이 하나 더 있다. 기후변화 그 자체다. 올해 9월 포항제철소 모든 용광로를 꺼지게 한 2022년 제11호 태풍 ‘힌남노’ 역시 기후변화의 산물이었다.
기후학자인 김형준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이전의 태풍은 저위도 해상에서 발생해 북상하며 서쪽으로 이동했지만, 힌남노는 우리나라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북쪽에서 발생해 한반도에 직격타를 입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따뜻한 해수 표면에서 에너지를 얻어 초강력 슈퍼태풍으로 자랐다.
김 교수는 “기후변화가 무서운 건 100년에 한 번 일어나던 기록적인 재해가 30년에 한 번, 10년에 한 번 하는 식으로 자주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단일 기업으로선 가장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따라 포스코는 탄소배출량을 2030년엔 20%, 2040년엔 50% 감축하고 2050년엔 넷제로 즉 탄소순배출량 '0'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10년간 20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 여기에는 힌남노 같은 기후재앙에 대비하는 적응 비용이나 재해 복구 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 국내와 세계의 산업부문별 온실가스 배출 비중.
철강을 비롯해 고속성장의 신화를 잉태했던 중화학 공업, 제조업, 건설업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으로 꼽힌다.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을 살펴보면 제조업, 건설업이 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평균이 2019년 기준 21.9%였던 데에 비해,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29.5%였다. 한국이 세계보다 7.6% 포인트 더 높다.
전환 즉 에너지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차이는 14.4% 포인트로 더 크다. 세계 평균은 31.1%이지만, 한국은 45.5%에 달한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에서 제조업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고 지적하며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발전과 산업 부문, 그 중에서도 철강과 석유화학의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산업군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면서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전략을 짜야 한다.
기후변화 이전에 만들어진 사회간접자본과 공장 설비들은 앞으로 더욱 자주 일어날 폭염과 가뭄, 폭우와 태풍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냉천 범람으로 침수 당한 포항제철소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러한 위기를 다른 관점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 외교통은 이를 계기로 한-미-유럽연합 3자 관계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국장은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매트’ 10월31일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든, 중국의 주장 증가든 지역 간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야기하는 도전은 에너지, 기술 관련 문제에 관해서도 지역 간 협력의 필요성을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한국, 그리고 유럽 연합은 제각기 야심 찬 기후변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목표 달성을 위해 3국은 전기자동차로 전환, 철강 생산 같은 고탄소 공정의 녹색화,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 탄소국경의 조정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로운 시장 리더가 탄생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한국대표는 “전쟁이 벌어지면 낙오자가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리더, 새로운 히어로도 생긴다”며 “고통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고통을 해소하는 해법을 만드는 사업,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걸 더 많이 만드는 사업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여기서 기회를 보고 있는 국내 기업은 많지 않다. 탄소전쟁을 자사의 위협으로 보고 있는 업체도 적다. 그러한 인식은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에서도 드러난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인다는 내용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30’에 대해 기업 82%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기존의 시나리오를 계승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0%에 불과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제조업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였다.
박호정 교수는 "탄소전쟁은 결국 돈을 둘러싼 전쟁"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라는 명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전쟁이기도 하다. 이경숙 이상호 기자
윤석열 정부에 엔지니어가 없다. 특히 국가 에너지 정책을 주관하려면 과학기술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정치 경제 전문의 관료출신들만이 포진되어있어서 국정농단 수준이다. 문외한들이 저지르는 실책들은 국가경영의 커다란 장애요인이되어 한국의 미래를 오랫동안 그르칠 것이다. 현재 이창양의 산업부와 김상협의 탄소중립위가 그러하며 이들이 언급하는 에너지 정책을 들으면 상식적인 인식조차 결여돼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극히 개탄스러운 일이다.
(2022-11-17 09:3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