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주연 '성기훈'역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씨(왼쪽)가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해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수상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배우 이정재씨가 연기로 우뚝 섰다.
1990년대 중반 드라마 모래시계의 성공으로 ‘청춘스타’라는 수식어를 단지 27년 만에 미국 본토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최고의 배우’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거머쥐었다.
특히 대상그룹의 후계자이자 오래 된 연인
임세령씨가 동반한 자리에서 상을 받아 감회도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극장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배우 이정재씨는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대한민국에서 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과 친구, 가족, 소중한 저희 팬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애초부터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시선이 많았다.
오징어게임에서 맡았던 역할로 미국배우조합상 드라마 남자배우상, 인디펜던트스피릿시상식 남자 최우수연기상, 크리틱스초이스시상식 드라마 남우주연상,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TV어워즈 스트리밍부문 드라마 남우주연상 등을 연달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정재씨가 오징어게임에서 맡았던 역할은 그가 전통적으로 잘 하는 연기가 아니었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가 오징어게임에서 연기한 성기훈이라는 캐릭터는 소위 말하는 ‘찌질한 남자’다. 도박 빚에 쫓겨다니다가 급기야 딸의 생일 선물을 사주라며 어머니에게 받은 돈을 경마장에서 탕진한다. 50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일을 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빌붙어 산다.
이정재씨가 맡았던 대부분의 역할들이 카리스마 넘치거나 남성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찌질한 남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영어권 최초로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다른 평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이정재씨는 연기로 인정받았던 배우는 아니었다.
1995년 크게 흥행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에 여자 주인공의 보디가드 역할로 등장해 그야말로 폭풍 스타 반열에 오른 뒤 1999년 영화 ‘태양은없다’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이정재씨는 2000년대 들어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주기적으로 등장했지만 상업적으로 흥행한 작품은 없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작품도 없었다.
항간에서는 외모와 눈빛, 몸매로만 뜬 배우일 뿐 이제는 한 물 갔다는 평가도 있었다. 애초 모델 출신의 배우가 가진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의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은 2010년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였다.
당시 영화는 1960년 개봉했던 원작과 비교해 평론가 및 관객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이정재씨는 하녀로 제31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주간부문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1999년 이후 12년 만이었다.
이후 영화 '도둑들'과 '신세계'에서 주연을 맡으며 배우로서 활동 폭을 넓혀가던 그가 ‘배우 이정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된 작품은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이다.
이정재씨는 수양대군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주연 역할을 맡았던 배우 송강호씨보다 더욱 주목받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역할을 소화하며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다.
영화에서 수양대군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현재까지도 ‘한국 영화 최고의 등장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재씨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이리’ 관상으로 표현되는 수양대군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왕국 방송 중에 늑대가 나오는 편들을 찾아봤다”며 “이리처럼만 하면 수양대군이 표현되는 건 아니지만 분명 수양의 일부분으로 시나리오에 적혀 있으니까 제게서 이리 느낌이 나길 바랐고 특히나 호랑이를 이길 만한 이리 느낌이 나도록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최고의 연기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이 인터뷰에서 그가 가진 배우로서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
수양대군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이정재씨는 이후 영화 '암살', '인천상륙작전', '신과함께' 등으로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10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인 JTBC 드라마 '보좌관'에서 타고난 정략가인 국회의원 장태준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하기도 했다.
오징어게임의 성기훈 역할로 에미상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그의 배우 인생에 ‘화룡정점’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최근 10년 동안 배우로서 연기 내공을 더욱 키워온 이씨는 앞으로 더 다양한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그는 최근 마니아층이 두터운 영화 '스타워즈'의 실사 드라마 시리즈 ‘더애콜라이트’의 주연 배우로 캐스팅됐다.
어떤 역할인지 아직 알려지진 않았으나 그가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배우 활동에 ‘n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배우로서 자신을 다시 주목받게 한 영화 하녀에 출연했을 당시 ‘다큐멘터리 같은 연기’를 지향점으로 꼽은 바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인생극장에 나오는 다큐멘터리 같은 연기가 좋다”며 “크레이지하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제프 브리지스도 노래 몇 곡 부른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나면 울림이 대단하잖나. 그런 연기에 요즘은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