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경기도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마스터플랜 수립계획 발표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 정부가 대규모 재개발 계획에 대한 기대감만 높여놓고 8·16 주택공급 발표 등에서 알맹이 있는 정책을 내놓지 않자 불만 여론이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재건축사업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1기 신도시 정부 발표에 주민 뿔났다, 재건축 접고 리모델링으로 가나

▲ 정부의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 수립계획을 두고 주민들 사이의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사업을 추진해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사진은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연합뉴스>


23일 부동산업계 말을 종합하면 1기 신도시 주민 사이에서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다. 

1기 신도시(경기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에서 도시정비를 추진하는 조합들은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 사업방식을 두고 조합원 사이 논쟁이 치열하다.

현재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예정 단지들 가운데 분당과 일산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용적률이 200% 수준으로 높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반면 리모델링사업은 준공 15년 이후부터 추진할 수 있다. 임대주택 공급 의무가 없고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만 초과이익환수제 대상도 아니다. 지구단위구역을 제외하면 용적률 제한이 없는 점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에 리모델링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있었지만 다수의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재건축을 원했다. 재건축을 통해 탄생한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사업을 통해 나온 단지보다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재건축 규제의 완화를 공약하고 나서 기대감을 키웠다. 1기 신도시에서 윤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재개발사업 예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들썩이기도 했다. 

실제 지난 6월29일 국토연구원에서 발표한 ‘1기 신도시 주택 소유자의 인식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1기 신도시 주민 549명을 설문조사 결과 46%는 재건축, 36%는 리모델링, 11%는 현행유지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발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8월16일 발표한 270만호 주택공급 대책에서 '2024년에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는 발표에 그치면서 험악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5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스터플랜 수립도 2024년 완성을 약속한 게 아니다. 국토부는 올해 하반기에 연구용역에 들어가고 "2024년 중에 재정비 마스터플랜의 수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수립'이 아니라 '수립 추진'이 되면서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2024년은 국회의원 총선이 있어 이 문제가 총선용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염려가 퍼지고 있다. 또 그 해는 윤 대통령의 집권 3년차이다. 임기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힘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 마스터플랜 수립의 현실성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8·16 정부 부동산 대책에는 재건축 관련 용적률, 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기준 완화 관련 내용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달에, 또는 내년에 발표하겠다는 설명만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을 만들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 100일이 넘도록, 또한 정부의 첫 대형 부동산정책이 나왔음에도 이와 관련해 계획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신도시 주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 분당시범단지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전날인 지난 22일 성남시 분당구 서현어린이공원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촉구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대선공약을 지켜라’ 등의 현수막을 들었고 위원장은 “국토부는 해명보다 주민협의체나 특별위원회, 태스크포스(TF)등의 구체적 내용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정책에 관한 신뢰성이 낮아지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원에 올라타 서둘러 리모델링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건축사업 추진에 관해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 1기 신도시 주택가격까지 떨어지면서 주민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남시는 리모델링 공공지원단지라는 제도로 리모델링조합에 행정적 지원과 사업비, 공사비 일부 등의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군포시는 지난해 10월 산본신도시 일대 리모델링사업 추진을 위해 미래성장국에 주택정책과를 신설하고 리모델링 지원팀을 만들었다. 

실제 8월16일 주택 공급대책 발표 이후 1기 신도시에서 실망 매물이 쏟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아파트 가격 변동률은 12일 기준 보합에서 19일 기준 -0.02%로 떨어졌다. 

특히 재건축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성남시 분당구(-0.04%)에서 가장 하락폭이 컸고 평촌(-0.02%), 산본(-0.01%) 등이 뒤를 이었다. 

1기 신도시는 1989년 5월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을 발표했으며 1992년 입주가 끝났다.

분당에는 9만6천 세대, 일산 6만9천 세대, 평촌과 산본 각각 4만2천 세대, 중동 4만1400세대 등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모두 29만 세대가 넘는 규모인데 이 단지들이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을 채우게 된 셈이다. 

1기 신도시는 개발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기반시설 부족, 건축물 안전, 도시 경쟁력 약화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 파기 논란 등을 두고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장관직과 정부의 책임성을 걸고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하겠다”며 “특별법 절차에 따라 속도 있게 진행되도록 특별법과 마스터플랜, TF를 통한 진도 관리에 대해서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의 절박성을 가지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