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깜짝 카드'를 꺼냈다. 광주광역시에 문화복합몰 '더현대광주(가칭)'을 짓겠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현대백화점의 다음 공략 지역으로 '유통업계 불모지'로 불리는 광주를 선택한 것에 대해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정 회장은 광주의 인구와 소비 수준 등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과거와 달리 시장에 뛰어들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6일 현대백화점이 미래형 문화복합몰 더현대광주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통업계에서 파격적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광주는 유통대기업의 무덤이라는 소리를 꾸준히 들었던 지역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임에도 창고형 할인매장이 유일하게 없는 광역자치단체다. 프리미엄아웃렛 등 대형 복합쇼핑몰도 없다.
광주시민들이 시청 홈페이지에 "광주에도 쇼핑몰이 입점하게 해달라"는 민원을 꾸준히 올릴 정도다.
물론 유통대기업의 진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만 해도 신세계백화점 광주점과 롯데백화점 광주점, NC백화점 광주역점 등 백화점 3곳이 있다.
하지만 집객력이 크고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복합문화공간이 없다는 측면에서 광주의 생활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런 배경에도 현대백화점이 광주 진출을 추진하는 것은 광주가 충분한 잠재력을 갖춘 시장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통계청이 2022년 3월 갱신한 ‘시도별 1인당 민간소비’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광주광역시의 1인당 민간소비는 연간 1746만 원이다. 전국 6개 광역시 가운데 울산광역시(1771만 원)와 대전광역시(1760만 원)에 이어 3번째로 소비가 많다.
구매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자주 사용되는 스타벅스 매장 수를 살펴봐도 광주의 잠재력은 상당하다.
스타벅스 홈페이지를 보면 광주에 있는 매장 수는 59개로 대전 60개, 인천 69개, 대구 76개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울산(30개)보다는 매장 수가 2배 가까이 많다.
인구도 적지 않다. 광주의 인구는 올해 6월 기준으로 143만5378명이다. 부산과 대구, 인천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지만 울산(111만5609명)보다 30만명 이상 많고 대전(144만8401명)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신세계가 2021년 8월 대전에 새 백화점 대전아트앤사이언스를 개점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백화점이 광주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새로 사업을 펼치기에 환경이 우호적이라는 점도
정지선 회장의 결단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판단된다.
광주가 유통업계의 무덤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소상공인의 생존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대와 이러한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며 행정기관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자가 광주에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사업의 외부환경이 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가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와 무등일보·전남일보·광주MBC·광주CBS의 의뢰로 4월17∼18일 광주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8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에 찬성하는 여론은 67.3%(매우 찬성 31.8%, 찬성하는 편 35.5%)였다.
10명에 7명꼴로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를 원하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고 광주시는 대형 쇼핑몰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광진 광주문화경제부시장 내정자는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복합쇼핑몰을 광주 안에 유치하겠다는 시민적 동의는 다 끝난 상태라고 생각한다”며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현대백화점이 더현대광주를 추진하는 것은 과거 광주에서 발을 뺐다가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대백화점은 과거 송원백화점으로부터 경영을 위탁받아 1998년부터 현대백화점 광주점을 운영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위탁경영 계약이 해지되면서 광주에서 사업을 철수했다.
이번 투자를 총괄하는
정지선 회장의 행보도 주목받는다.
정 회장은 그룹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개점을 진두지휘하며 흥행에 성공시킨 뚝심의 오너경영인이다.
현대백화점이 2016년 서울 여의도에 조성될 대형쇼핑몰 운영권을 낙찰받을 당시만 해도 그룹 내부의 반발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지구라는 특성상 여의도에 고객을 모으는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여의도점을 현대백화점그룹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로 개발해야 한다”는 특명을 내리며 사업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더현대서울은 유통업계가 깨지 못했던 기존 틀을 완벽하게 깨는 방식으로 공간을 재구성했고 그 결과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더현대서울은 개점 1년 만에 매출 8천억 원을 올렸는데 올해 연 매출 1조 원 클럽에 가입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