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이 보유하고 있던 우리금융지주 지분 2300만 주를 모두 매각한 것을 두고 사실상 지급여력(RBC)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결정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여 사장은 내년 새 제도 도입에 대비해 특히 자본성 증권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을 적극 추진해 왔는데 이 방법만 추진하기 보다는 조달 방안을 다양화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후순위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 증권을 발행하면 당장 지급여력비율을 낮추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나중에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작지 않다. 여기다 최근 금리가 상승하고 한화생명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 낮아지면서 이자 비용도 더욱 커졌다.
한화생명은 17일 10년 만기로 4천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권을 발행했다고 공시했는데 이 채권의 연 이자율은 5.30%로 한화생명이 2월 발행한 10년 만기의 해외 후순위채권의 연 이자율 3.379%과 단순 비교해도 2%포인트 더 높다.
한화생명은 17일 우리금융지주 지분 매각으로 3천억 원 정도를 확보했는데 이를 재투자하지 않고 잉여금으로 두게 되면 지급여력금액이 3천억 원 만큼 증가해 지급여력비율도 4~5%포인트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보험상품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지급여력금액을 기준금액으로 나눈 값인데 지급여력금액에는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기타포괄손익 누계액 등이 포함된다.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된 점도 여 사장의 결정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코스피지수 흐름에 비춰볼 때 앞으로 우리금융지주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지금시점에서 매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한화생명은 17일 외국인 투자자에게 블록딜 형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우리금융지주 지분 3.16%를 모두 매각했다.
여 사장은 내년 새 제도 도입을 앞두고 자본관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무·금융 전문가로 면모를 살려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성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올해는 실적 개선이 뒷받침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시장 침체에 따른 주식매매이익 감소와 변액보증준비금 적립 증가 등의 영향으로 한화생명을 비롯해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국내 대형 생명보험사 3곳 모두가 1분기에 순이익이 줄었다. 한화생명의 1분기 순이익은 별도기준으로 509억 원으로 2021년 1분기와 비교해 73.8% 감소했다.
물가상승과 세계 각국의 긴축정책에 따른 금리인상 등 영향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하반기에도 보험사들의 실적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국신용평가는 5월 낸 한화생명 신용등급 평가 보고서에서 “한화생명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차례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이어 2022년 외화 후순위채 발행 외에도 추가 국내 발행이 예정되는 등 선제적 자본확충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그러나 이익에 의한 지급여력비율 유지능력을 측정하는 비율이 최근 3년 평균 3.8%로 업계 평균을 하회한다”고 분석했다.
한화생명을 포함한 국내 보험사들은 보험사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새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을 앞두고 지급여력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자본확충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은 기존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새 제도 도입 뒤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이 최대 40%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보험법상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 최저기준인 100%를 유지해야 한다.
지급여력비율이 100% 밑으로 떨어지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적기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다. 보험사는 바로 자본확충 등 재무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한화생명은 지급여력비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한화생명의 올해 1분기 기준 지급여력비율은 161.0%로 지난해 12월(184.6%)보다 23.6%포인트 낮아졌다.
여 사장이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한화생명의 재무건전성을 개선하며 경영능력을 입증한다면 그룹 내 입지도 한층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 사장은 2019년 3월 한화생명 대표에 올라 2021년에 2년 임기로 연임에 성공했다.
여 사장은 1985년 경인에너지(현 한화에너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한화그룹 재무회계담당 부장,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상무보, 대한생명 재정팀장 상무, 대한생명 전략기획실장 전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부사장, 한화투자증권 대표,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금융팀장 사장 등을 거쳤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사람을 한 번 믿으면 오랫동안 중용하는 인사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여 사장 전임 대표이사였던 차남규 전 부회장은 2011년부터 2019년 말까지 10년 가까이 한화생명을 이끌었고 전문경영인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부회장까지 오르기도 했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