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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 |
제일기획은 삼성그룹을 떠나도 순항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을까?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적극적 인수합병과 디지털마케팅 등 신규사업을 강화해 삼성그룹의 의존도를 낮추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제일기획이 삼성그룹의 품을 떠날 경우 그룹에서 분리된 광고대행사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제일기획은 다를까?
27일 광고업계에 따르면 제일기획 매각협상이 길어지는 것은 매각가격을 비롯해 삼성전자 물량의 보장기간을 놓고 의견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광고대행사 매각사례를 보면 최소 5년 이상 물량유지와 겸업금지 조건이 붙었다. 인수자 입장에서 이런 조건이 보장돼야 위험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HS애드(전 LG애드)는 2002년 LG그룹에서 매각된 뒤 외형이 급격히 줄었고 2008년 다시 LG그룹으로 재편입되면서 성장세로 돌아섰다.
금강오길비(전 금강기획)는 첫 자동차전문 광고대행사였는데 현대자동차는 1999년 금강기획을 매각한 뒤 자체적으로 광고물량을 소화하다가 이노션을 설립해 광고물량을 몰아주고 있다.
제일기획은 2010년 삼성전자가 갤럭시 브랜드를 론칭한 뒤 삼성전자 마케팅 강화에 따른 수혜로 크게 성장했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영업총이익의 60%를 삼성전자의 광고대행으로 거뒀다.
제일기획이 삼성그룹의 품을 떠나더라도 HS애드나 금강오길비 등과 다른 방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제일기획은 매각협상 이전부터 삼성그룹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기획은 삼성전자의 광고물량이 정체되자 신시장 진출과 비계열 광고주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영국 아이리스 등 해외 광고대행사를 인수합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일기획은 올해 1분기 삼성그룹 외 광고물량의 비중이 37%를 차지했는데 지난해 1분기 35%에 비해 소폭이나마 개선했다. 2014년 삼성그룹 외 광고물량이 24%인 점을 감안하며 삼성그룹의 의존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제일기획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서 삼성전자 물량의 비중이 높지 않다. 제일기획 자력으로 디지털광고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의 금강오길비 매각 사례처럼 5년 보장기간이 끝난 뒤 광고사업을 자체적으로 소화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 자체적으로 광고대행업을 하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효율화’ 전략과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제일기획의 ‘글로벌 광고회사’ 위상
임대기 사장은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제일기획은 인수한 회사를 통해 새로운 광고주를 계속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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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기획 홍콩법인이 비영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중국에서 펼친 ‘실종어린이 잠금화면’ 캠페인. 미국 뉴욕에서 9~13일 열린 '원쇼(The One Show)광고제'에서 은상 1개, 메리트상 2개 등 모두 3개 부문의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
제일기획이 만약 글로벌 광고회사 ‘퍼블리시스’에 인수될 경우 해외에서 새로운 광고주를 늘려 외형을 키우는 데 유리할 수 있다. 퍼블리시스는 글로벌 3위 광고회사로 규모가 제일기획의 10배에 이른다.
제일기획이 이미 해외사업 비중을 높이며 글로벌 광고회사로 도약하고 있어 국내에서 ‘삼성그룹’의 계열사로서 누렸던 프리미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제일기획은 올해 1분기 전체 영업이익의 72.3%를 해외에서 거뒀고 전체사업에서 해외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76%에 이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와 달리 해외는 삼성그룹 계열사라는 프리미엄이 통하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이라며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국내 광고시장은 경기둔화로 이미 성장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은 특히 광고시장 최대 화두인 중국 디지털광고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일기획은 올해 1분기에 중국에서 영업총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성장하면서 본사 영업총이익 규모를 이미 넘었다. 중국사업의 경우 삼성전자 광고물량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
제일기획의 자회사인 ‘펑타이’는 중국에서 디지털마케팅을 맡고 있는데 영업총이익이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27% 증가하며 중국사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임 사장은 추가 인수합병을 통해 제일기획의 영업총이익을 연간 10% 이상 끌어올리려고 한다.
이런 임 사장의 계획이 현실로 나타나면 심성그룹 물량의 비중은 매년 5~6% 감소해 그만큼 삼성그룹 의존도는 낮아지게 된다.
◆ 디지털광고, B2B마케팅 등 신규사업 역량 강화
임 사장은 제일기획의 신사업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임 사장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B2B마케팅,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신사업 역량 강화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제일기획은 최근 구글과 디지털 마케팅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협력은 유튜브와 검색 등 구글의 온라인 플랫폼에 디지털광고 상품활용을 확대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이번 협력으로 모바일 광고 등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수요가 높은 광고주들에게 효과적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글은 광고상품 매출증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은 동영상시대에 발맞춰 국내 유튜브 상위 5% 이내의 인기채널로 구성된 광고상품인 ‘구글 프리퍼드’(Google Preferred)를 활용해 경쟁력있는 광고 캠페인을 집행하려고 한다.
디지털광고시장은 매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제일기획이 집계한 국내 디지털 광고시장은 2014년과 비교해 11% 성장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조 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디지털광고시장은 연평균 12%가량 성장해 2017년 사상 처음으로 TV광고 시장을 앞지르고 2019년 2399억 달러(약 272조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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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제일기획은 최근 주요 광고주들 사이에서 B2B(기업간거래)마케팅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역량을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제일기획은 지난달 영국에 있는 자회사 아이리스를 통해 영국 B2B마케팅 전문회사인 ‘파운디드’를 인수하며 영미지역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파운디드는 연간 영업총이익이 100억 원 규모로 크지는 않지만 여행과 IT업종에서 40개 이상 광고주를 확보하고 있는 데다 B2B마케팅에 특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제일기획이 매각협상과 상관없이 사업을 강화하고 기업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그룹은 제일기획과 결별할 수 있나
제일기획은 광고주들의 새로운 수요를 적극 파악하며 광고회사로서 역량을 키우고 있다. 이는 제일기획이 삼성그룹을 떠나더라도 실력으로 삼성그룹의 광고물량을 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제일기획은 국내외 광고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광고회사로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김희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2014년까지 제일기획 지분을 2.5%만 보유하고 있었지만 제일기획에 집행하는 광고를 꾸준히 늘려왔다”며 “삼성전자가 2014년 말 인수한 제일기획 지분 10%를 포함한 12.6%을 매각한다고 해서 삼성전자의 광고물량을 줄일 것이란 우려는 과도하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광고는 회사의 장기전략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의 비밀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계약을 장기간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일기획이 삼성전자 광고집행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제일기획 역시 ‘갤럭시’브랜드 마케팅전략을 통해 삼성전자가 글로벌기업으로 크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칸 국제광고제를 주최하는 칸 라이언즈 조직위원회에서 국내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올해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터’로 선정됐다.
칸 라이언즈는 올해 63회째를 맞는데 매년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해 광고와 홍보, 마케팅 캠페인 등 다양한 부문에서 창의성을 경쟁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상에 대해 “글로벌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 레오버넷 등과 성공적 협업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도 제일기획과 ‘룩앳미’(Look at me) 캠페인을 함께 하며 유수의 광고제에서 수상을 하는 등 광고대행사로서 제일기획에 광고를 맡긴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