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비즈니스포스트] 새 정부 들어 다양한 공공분야에서 공기업의 기능 축소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110대 국정과제, 장관 후보자 등 새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서 공공부문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은 확고해 보인다.
10일 윤 대통령의 취임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라고 강조하며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고 말했다.
‘자유’는 취임사 전체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로 모두 35회 언급됐다. 자유 다음으로 많이 쓰인 단어는 15회 쓰인 ‘국민’이다.
윤 대통령이 다른 단어보다 ‘자유’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 것은 평소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작은 정부와 시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가치관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경제학자인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명예교수는 윤 당선인이 대학에 입학할 때 미국의 대표적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은 물론 대선후보가 된 뒤에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선택할 자유’를 꼽아 왔다. 윤 대통령의 가치관은 새 정부의 내각 인선과 국정운영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수위가 내놓은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경제 관련 국정목표로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내걸었다.
경제에서 민간의 역할 강조는 필연적으로 정부 등 공공의 역할 축소로 연결된다. 공공기관의 역할 축소는 일각에서 공공부문 민영화의 전단계로 간주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한국전력공사와 관련해 민영화 논란을 겪었다.
인수위는 지난 4월28일 전력시장의 개편 방안을 놓고 “한전이 전력을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현재의 전력유통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전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인수위은 다음날인 4월29일 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한전의 민영화를 검토한 것이 아니다”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새롭고 다양한 전력 서비스 사업자가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전력 시장이 경쟁적 시장 구조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철도 영역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지난 4월30일 국회 인사청문회 사전질의 답변서를 통해 “철도의 유지보수, 철도교통관제 운영 등을 국가철도공단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원 후보자의 발언을 놓고는 사실상 코레일의 철도운영 업무를 쪼개기 위한 사전작업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원 후보자는 관제 등 업무를 국가철도공단으로 넘기겠다는 이유로 “여러 철도운영사가 있는 만큼 이 가운데 한 운영사가 관제를 맡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복수의 철도운영사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철도 영역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이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지만 철도 민영화 추진과정에서 2004년 시설관리 부문을 분리해 국가철도공단이 설립됐다. 이어 수서발 고속철도의 운영이 분리돼 SR이 설립되는 등 꾸준히 쪼개기 작업이 진행돼 왔다.
금융 공기업 관련해서도 민영화 논의가 시작됐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20일 KDB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놓고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이 토론회에서 “중소기업금융지원과 상업금융 부문은 ‘중소기업 정책금융공사’에 이전하거나 민영화를 추진하고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금융과 혁신기업 투자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놓고 여론이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던 1980년 이후 2000년 초반까지 공공부문 민영화는 경제 성장을 위한 ‘특효약’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현재는 공공요금 폭등 등 공공기관 민영화의 실패 사례가 누적돼 국내에서도 민영화에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
인수위 등이 공공부문의 역할 축소를 추진하려 하면서도 ‘민영화’ 논란에 “검토한 바 없다”면서 진화에 나서는 것도 이런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 이후 과거와 달리 세계적으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는 분위기라는 점도 윤 당선인이 추진하는 공공부문의 역할 축소가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0일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놓고 “윤 대통령이 언급한 ‘도약’과 ‘빠른 성장’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통해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풀겠다는 해법은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과거에 실패한 신자유주의로의 회귀는 아닌지 묻는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