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한진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KCGI의 주주제안이 모두 부결된 것은 예견된 일이라는 시선이 많다.
아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산업은행이 우군으로서 조 회장의 편에 설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에 8천억 원을 투입해 지분 10.58% 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을 제외한 조원태 회장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18.87%, 조 회장의 우군인 델타항공의 지분은 13.21%에 이르는 만큼 산업은행이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승리는 확실했다.
특히 이번에 KCGI는 단독으로 주주제안을 했다. KCGI는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17.41% 들고 있다.
이번 주주제안에는 과거 함께 조 회장에게 대항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3자 연합’에 속한 반도건설도 참여하지 않았다. 반도건설은 자회사인 대호개발을 통해 한진칼 지분 17.02%를 들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한진칼 지분은 2021년 12월 말 기준으로 2.06%에 그친다.
조원태 회장이 2년 만에 KCGI의 경영권 견제를 물리치고 지배권을 공고히 하면서 한진그룹 전반에 친정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커졌다.
먼저 조현민 한진 사장이 사내이사에 오를 가능성이 나온다. 한진은 24일 주주총회를 여는데 주주총회 안건에는 조현민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주주총회 안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조 회장이 사모펀드 KCGI의 표 대결을 통해 한진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한 만큼 다음 주주총회에서는 조현민 사장을 한진 사내이사로 올려 한진그룹 전반에 친정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현민 사장은 올해 초 한진그룹 인사를 통해 한진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총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보폭을 넓히고 있지만 아직 한진의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한 차례 조현민 사장은 사내이사에 오르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한진의 2대주주인 HYK파트너스가 이를 문제 삼으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번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KCGI의 주주제안이 통과됐다면 한진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컸다고 볼 수 있다.
KCGI는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판결을 받은 자를 이사직에 둘 수 없도록 제안했는데 이는 조현민 한진 사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정관이 바뀌면 앞으로 한진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쳐 과거에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 사장이 사내이사에 오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KCGI는 주주제안을 하며 “한진의 조현민 사장 선임은 과거의 후진적인 지배구조로 회귀다”며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사를 계열회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기업가치와 회사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KCGI는 이러한 기업가치 훼손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 회장은 이날 주주총회를 통해 지배구조를 공고히 한 만큼 앞으로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은 주주총회에서 석태수 한진칼 대표가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올해를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 나아가는 원년으로 삼겠다"며 “향후 해외 주요 국가의 기업결합 승인 등 남은 과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항공업계를 성공적으로 재편하고 양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하나 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임직원들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KCGI가 이번 주주제안은 실패했지만 입을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CGI가 3자 연합 해체 이후에도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 조 회장 일가를 제외한 최대주주로서 경영진을 견제하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사모펀드라는 사실을 대내외로 알린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KCGI는 2020년에도 주주제안을 했다. 당시 KCGI는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결성하며 조원태 회장 해임을 시도했지만 3자 연합이 패배하며 결국 연합은 해산됐다.
KCGI가 이번 주주제안을 계기로 한진칼 지분을 정리하고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주식 1주당 평균 단가는 3만 원대 초반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한진칼의 종가가 23일 기준 5만9100원에 이르는 만큼 KCGI가 투자금 회수에 나선다면 3천억 원 이상의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