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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텐센트 마화텅(1) 중국판 카카오의 시작

노녕 기자 nyeong0116@businesspost.co.kr 2022-02-15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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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중국 기업은 세계무대에서 다방면에 걸쳐 우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기업이라도 이들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기업의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영전략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노녕의 중국기업인탐구-텐센트 마화텅
[1] 중국판 카카오의 시작
[2] QQ, 사업확장의 초석 닦다
[3] 종합 투자회사로 발돋움
[4] 중국 반독점 규제에 직면

한국에 카카오톡과 카카오가 있다면 중국에는 QQ와 텐센트가 있다. 

1999년에 텐센트가 처음 선보인 QQ는 PC용 채팅 플랫폼이다. 당시 다른 국가에서 주로 쓰이던 마이크로소프트의 MSN, 한국의 버디버디 등 메신저서비스와 유사하다.
 
[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텐센트 마화텅(1) 중국판 카카오의 시작
▲ 마화텅 텐센트 회장.

스마트폰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2011년 텐센트는 모바일과 PC 겸용 채팅 플랫폼 위챗을 출시했다. 위챗은 현재 월간 이용자 수가 10억 명이 넘는 중국의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위챗에 적용된 간편결제서비스 위챗페이는 QR코드를 연동해 중국 내 거의 모든 곳에서 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폭넓게 보급됐다. 중국에서 현금을 이용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텐센트는 QQ를 처음 선보일 때까지만 해도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 설계 등을 담당하던 작은 기업에 그쳤지만 QQ와 위챗의 성공, 꾸준한 사업 다각화에 힘입어 중국 최대 IT기업으로 성장했다.

14일 기준 시가총액 규모는 4조5300억 홍콩달러(856조 원)에 이르며 게임 개발사, 게임 퍼블리싱업체, 영화와 드라마 등을 포함한 종합 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 리그오브레전드 등 여러 유명 게임 개발사의 대주주나 파트너사로 자리잡고 있다.

텐센트 최고경영자 겸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마화텅은 텐센트 창립멤버 가운데 핵심 인물로 과감한 도전과 실력을 앞세워 자수성가한 프로그래머 출신 경영자이자 오너로 꼽힌다.

◆ 프로그래머 출신 기업인 마화텅

마화텅은 중국 1세대 프로그래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다니던 대학의 PC 보안 솔루션을 만드는 데 기여할 만큼 프로그래밍 실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텐센트의 주요 창립멤버 가운데 한 명이며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다.

마화텅은 1971년 10월29일 광둥성 둥팡현(지금의 하이난성 둥팡시)에서 태어났다.

경제특구단지가 세워진 선전시로 1984년에 이주했고 1989년 선전대학 전자공학 컴퓨터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부터 마화텅은 프로그래밍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대학 교수와 친구들이 그의 실력에 모두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특히 각종 컴퓨터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익혀 PC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마화텅은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이미 친구들과 구바카로 불리는 증권 분석시스템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를 활용해 텐센트 설립을 위한 사업 자금도 마련했다.

그는 구바카를 활용해 벌어들인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했고 초기 재원인 10만 위안을 70만 위안까지 불리는 데 성공했다. 이 자금은 향후 마화텅이 친구들과 텐센트를 세우는 기반이 됐다.

대학 졸업 뒤에는 선전시의 한 통신장비회사의 프로그램 엔지니어로 취직해 삐삐 무선호출기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문적으로 담당했으며 이후에는 개발부서의 책임자로 승진했다.

마화텅은 이 회사에서 개발자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소프트웨어시장에 관련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게 됐고 이 분야에서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마화텅은 2016년 10월31일 칭화대학 경제관리학원이 주최한 한 포럼에 참석해 "나는 성실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리더가 될 수 있는 인재도 아니었다"며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제품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꿈을 꿨다"고 창업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 채팅 플랫폼으로 텐센트의 초기 기반 세워

마화텅은 인터넷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에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1998년 대학교 동창인 장즈둥(张志东)과 선전시텅쉰컴퓨터시스템유한공사(텐센트)를 세웠다. 텐센트의 중국식 회사이름은 텅쉰(腾讯)이다. 

텐센트를 세운 초창기에는 지출이 나갈 때마다 마화텅과 그의 동업자들이 손 떨리고 무서운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는 일화도 있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중국 인터넷시장에서 큰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마침 삐삐 등 무선호출기시대가 저물고 1G통신 기반 휴대폰이 새롭게 출시되면서 통신업계에 세대 교체가 이뤄지던 시점이 왔다.

마화텅은 인스턴트 메시지의 원조격인 ICQ 중국판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창립멤버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서도 인터넷 채팅 수요가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ICQ를 모방한 채팅서비스사업인 OICQ를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중국에서는 이미 두 곳의 대기업이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채팅서비스 개발과 운영이야말로 그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이 들었다. 텐센트의 성장 방향이나 핵심 기술과 어울리는 분야기도 했고 더 많은 기업들이 뛰어드는 상황이라 오히려 시장에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개발 끝에 1999년 OICQ가 세상에 나왔다. OICQ의 이름은 나중에 QQ로 변경됐다.

2016년 칭화대학 포럼에 참석한 마화텅은 치엔잉이 칭화대학 경제관리학원 원장과 대화에서 "QQ라는 이름이 정해지기 전 우리는 이런 서비스를 '인터넷 삐삐'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인터넷 채팅이 앞으로 중요한 통신수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선구안을 보인 셈이다.

마화텅은 "나는 일찌감치 컴퓨터와 통신 영역이 결합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은 통신을 몰랐고 통신 업계 인재는 컴퓨터를 알지 못했다"며 "나는 마침 두 영역 모두에 다리를 걸치고 있어서 QQ를 만들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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