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


김창근은 1950년 9월1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용산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남가주대학교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에 입사해 주로 자금과 재무를 담당했다.

SK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 팀장 상무이사, 전략경영팀 재무담당 상무이사, Sk구조조정추진본부 재무담당 상무이사를 거쳤다.

SK그룹이 SK텔레콤을 인수할 당시 SK텔레콤의 SK신세기통신 통합추진협의회 추진위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SK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소버린 사태를 겪으면서 물러났다. 그뒤 SK케미칼 부회장으로 돌아왔다.

2012년 12월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의장을 맡아 SK그룹을 이끌었다.

최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에도 2016년 말까지 의장을 계속 맡았으며 SK이노베이션 회장도 겸했다.

2016년말 인사에서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샐러리맨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까지 올라 SK그룹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다.

1994년 최종현 SK회장을 도와 옛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04년 SK케미칼 부회장 부임 이후 7년간 핵심사업을 첨단 화학소재, 생명과학을 탈바꿈시켜 기업가치를 400%넘게 늘리는데 크게 공헌했다.

또 2012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추대될 때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꼼꼼한 성격으로 일처리가 매끄러우면서도 대인관계의 폭이 넓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IMF 사태 이후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과 관련한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SK가 양호한 재무상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직원들과 소통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SK그룹 안팎에서는 ‘소통의 명장'으로 평가받는다. SK케미칼 부회장으로 근무할 당시 노사평화선언과 함께 회사 창립이래 42년 무분규를 이끌었다. 당시 포브스의 ’소통 부문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했다.

김창근은 설명을 할 때 이해가 쉽도록 비유와 예시를 곁들여 설명한다. 이는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고 태권도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하면서 들인 습관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의 아침에 수련을 하면서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곤 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4년 선경인더스트리(현재의 SK케미칼) 울산공장 관리부 노무과에 입사했다. 1981년 선경인더스트리 자금부 외환과 과장, 1987년 자금부 부장으로 일했다. 이후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1996년 SK케미칼 경영기획실 재무팀장 이사로 근무했다.

IMF 위기가 발발한 1997년 SK 구조조정추진본부 재무팀장 상무로 부임하였으며, 2000년 같은 팀 전무로 승진했다.

2000년 SK 재무지원부문장 부사장, SK 구조조정추진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2002년 SK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으나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사장에서 내려왔다.

2004년 SK경영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2004년 3월 SK케미칼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게 됐다.

SK그룹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SK이노베이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관계사와 계열사와 스킨십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이를 사업적 의사결정과 접목해 최적의 답을 내는 그룹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소통경영을 펼쳐나가고 있다.

2015년 8월 그룹 계열사의 팀장급 이상 직원들과 오찬을 하며 업무현안과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2015년 11월에도 같은해 영입된 관계사의 임원 22명을 불러 소통의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직속 조직인 IFST를 만들었다. 이는 SK그룹 중순 조직개편을 통해 생긴 것이다.

IFST는 SK그룹 계열사가 인수합병(M&A), 사업 구조 혁신, 글로벌 메이저사와 파트너십 체결, 새로운 분야로 사업 영역 확장 등을 계획할 때 재무적ㆍ사업적 방향을 연구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16년 12월 정기인사에서 SK수펙스협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2004년 전경련 국제산업협력단 이사, 200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 학력

1968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2년에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남가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 가족관계

부인과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08년 에너지절약 촉진대회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9년 21세기경영인클럽이 주관하는 '21세기 대상'에서 ‘올해의 21세기 경영인’을 수상했다.

2012년 포브스가 주관한 최고경영자 대상에서 ‘소통경영 부문 최고경영인' 경영대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08년 에너지절약 촉진대회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9년 21세기경영인클럽이 주관하는 '21세기 대상'에서 ‘올해의 21세기 경영인’을 수상했다.

2012년 포브스가 주관한 최고경영자 대상에서 ‘소통경영 부문 최고경영인' 경영대상을 수상했다.

어록


“지난 3년간 사내이사 및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며 에너지, 화학사업 분야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회사의 구조적 혁신과 글로벌 사업 확장 등에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해 재선임 후보로 추천했다.” (2016/03/18, ‘SK이노베이션 제9차 정기 주주총회’ 이사회에서)

“역량 있고 경륜 있는 분들이 개인의 성장과 함께 우리 그룹과 회사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 넓은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 (2015/12/11 ‘2015년 영입임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의 대화’에 참석하면서)

"항상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추진하는 SUPEX(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추구와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의욕적인 두뇌 활용을 극대화해 신바람 나게 하는 것이며...(중략)창조경제와도 맥을 같이 한다” (2014/01/16, SK 그룹 계열사 신입사원 연수기간 중 “SK의 성장을 이끌어 온 힘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지휘나 명령이 아니라 조정에 있다"(2013/02/27, 기자간담회에서 수펙스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저희 세대는 선배들이 예지력과 지도력을 갖고 틀을 잡아 놓은 일은 무작정 하면 되는 세대였어요. 단순한 목표를 명확히 잡아서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면 성과가 있었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이 「OR」였다면, 요즘은 「AND」의 세대 같아요.” (2006/04/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잠깐 뒤돌아볼까요? 1980년대까지는 어떤 회사가 가장 좋은 회사였는지 알아요? 구성원들한테 施惠(시혜)를 베푸는 곳이었어요. 당시 회사의 시혜는 여덟 가지 정도였어요. 좋은 품질의 식사, 편한 회사 의복이나 안전화, 통근버스, 기숙사, 자녀들에 대한 학자 보조금, 경조사 챙기기 등. SK그룹은 사내 직원들에 대한 복리후생 책자가 「에쿠스」 자동차 안내책자보다 더 두꺼울 거예요. 여태까지 몇 개 했죠?” (2006/04/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보통 이럴 때 빵점이라고 하는 건가요? 빵점이라 하면 좀 억울한데…. 나름대로 아기자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중요한 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예요. 교훈과 잔소리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듣는 사람이 의미 있게 들었으면 교훈이고, 아니면 잔소리예요. 회사생활 못지않게 가정에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가족의 요구 수준에 덜 미쳤다고 하면 섭섭할 것 같은데…“ (2006/04/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가정에서 몇점짜리 남편이냐'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

◆ 평가

샐러리맨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까지 올라 SK그룹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다.

1994년 최종현 SK회장을 도와 옛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04년 SK케미칼 부회장 부임 이후 7년간 핵심사업을 첨단 화학소재, 생명과학을 탈바꿈시켜 기업가치를 400%넘게 늘리는데 크게 공헌했다.

또 2012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추대될 때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꼼꼼한 성격으로 일처리가 매끄러우면서도 대인관계의 폭이 넓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IMF 사태 이후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과 관련한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SK가 양호한 재무상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직원들과 소통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SK그룹 안팎에서는 ‘소통의 명장'으로 평가받는다. SK케미칼 부회장으로 근무할 당시 노사평화선언과 함께 회사 창립이래 42년 무분규를 이끌었다. 당시 포브스의 ’소통 부문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했다.

김창근은 설명을 할 때 이해가 쉽도록 비유와 예시를 곁들여 설명한다. 이는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고 태권도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하면서 들인 습관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의 아침에 수련을 하면서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곤 했다.

◆ 기타

태권도 공인 3단이다. 중ㆍ고등학생 당시 몸이 허약해 태권도를 배웠으며, 대학시절에는 태권도 강사로 일했다.

2014년 3월14일 현재 SK케미칼 40,439주(0.19%)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 26억500만 원의 연봉을 SK이노베이션에서 받았다. 그는 2014년부터 2년 연속으로 SK그룹의 주요 계열사 경영진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다. 이는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