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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실용주의’로 요약된다.
실용주의의 핵심은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1등할 수 있는 분야에 ‘올인’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실용주의가 대내외적 위기상황에서 당연한 선택일 수 있지만 과감한 도전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기업가 정신’ 관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유럽 등 해외 주재원을 줄이라고 삼성전자 등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등 정보수집 창구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인력이 해외에 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유럽에서만 200명 안팎의 주재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대신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 등 신흥시장에서 영업상황에 따라 주재원을 더 늘려도 좋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12월 중순으로 예정된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비용절감과 영업력 강화 방안을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삼성그룹의 이런 ‘허리띠 졸라매기’는 12월 정기인사에서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12월2일 사장단, 4일 임원인사를 발표할 예정인데 올해는 지난해에 달리 대규모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변화보다 안정을 중시했다.
하지만 올해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자리를 잡은 데다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들의 부진을 타개할 수 있는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임원 1300여명 가운데 20~30%가 옷을 벗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올해 승진 폭도 최소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에서 지난해 임원승진자는 353명으로 2013년보다 25.8%나 줄었다.
삼성그룹의 이런 움직임을 놓고 수긍은 가지만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지금 삼성그룹의 실용주의를 이해 못할 것은 없다”며 “그러나 삼성그룹이 재계를 선도하는 만큼 비용절감보다 오히려 도전적 자세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해외 주재원 감축의 경우 인터넷 등으로 얻는 정보와 그 나라에 살며 주재원이 알게 되는 정보의 질이 엄연히 다른데 비용측면에서만 접근해 내린 결정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시대 들어 삼성그룹은 현장과 영업력 강화를 앞세운 인력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놓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움직임이 자칫 연구개발(R&D)조직으로까지 확산되면 삼성그룹의 기술연구역량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생활가전부문의 산하 핵심연구조직인 DMC연구소의 축소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DMC연구소 인력의 절반수준을 사업부로 전환해 배치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생활가전부문 산하지만 스마트폰사업을 담당하는 IM부문까지 포괄해 삼성전자 제품에 적용되는 미래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각 사업부의 개발팀이 1~2년 내 상품화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는 반면 DMC연구소는 장기적 기술개발에 주력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가장 손쉽게 고려할 수 있는 게 단기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 곳을 축소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연구개발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삼성그룹의 미래기술 역량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가 미래의 1등을 키워내기보다 현재의 1등 자리를 지키는 데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은 미래 성장동력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보여주는 모범사례”라며 “최고경영자라면 때로는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과감한 도전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글로벌 제약회사에 비하면 구멍가게나 마찬가지인 데도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술 개발에 수백억 원을 쏟아 부어 마침내 성공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한국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는 반도체나 자동차 등 주력산업은 대부분 이러한 무모한 도전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