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은 10일 오전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 2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이 ‘노조추천 이사제’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KB금융지주에서 노조추천 사외이사가 등장한다면 무려 ‘4수’ 끝의 성공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의 사외이사 추천 시도를 놓고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임명됐다는 점에서 이번 시도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KB금융지주의 노조추천 이사제 도입을 여러 차례 추진했던 인물이다.
박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임명되면서 KB금융지주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현직 금융노조위원장이 여당 최고위원이 된 것은 이례적 일로 꼽힌다.
이에 앞서 10일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은 11월20일 개최 예정인 임시 주주총회에서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를 새로운 사외이사로 선임하기 위한 주주제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KB노조협의회와 우리사주조합이 한 목소리를 내오고 우리사주조합장이 노조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노조추천 이사제 추진으로 볼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박 위원장뿐만 아니라 한정애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비롯해 민주당 지도부에 노동계 출신이 많다”며 “박 위원장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으니 이전보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박홍배 위원장과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직접 참석해 조합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번에 추천된 사외이사 후보들이 KB금융지주가 힘을 싣고 있는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전문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윤순진 후보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 그동안 꾸준히 탈원전을 주장해왔다. 당장의 편리와 단기적 경제성을 이유로 원전을 더 짓고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리는 건 경제를 망치고 미래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이다.
류영재 후보는 2006년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국내에 스튜어드십코드가 알려지기도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책임투자와 의결권 행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류 후보는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가 지닌 문제점으로 견제없는 황제경영, 오너일가의 사익 편취, 오너의 평판리스크 등 크게 3가지를 꼽는다.
KB금융지주는 3월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ESG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ESG위원회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해 사내 및 사외이사 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이사회 안에 ESG를 전면으로 내건 위원회를 둔 건 KB금융지주가 유일하다.
우리사주조합은 KB금융지주의 ESG위원회를 겨냥하며 “무늬만 ESG경영이 되지 않으려면 ESG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를 비롯해 국내 금융지주는 일반기업과 달리 지배구조상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주인 없는 회사’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 선임 과정이 일반기업보다 한결 중요하다. 사외이사가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주의 사외이사 추천과 관련한 권리는 현행법인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보장한다. 이와 별개로 KB금융지주는 ‘사외이사 예비후보 추천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해 주식 1주만 소유하더라도 사외이사 예비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KB노조협의회는 이에 앞서 2017년 11월과 2018년 3월에도 각각 하승수 변호사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등 진보적 인사를 주주제안 형식으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지만 두 번 모두 주주총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7년 찬성률은 17.8%, 2018년 찬성률은 4.3%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백승헌 변호사로 추천했으나 백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이 KB손해보험에 법률자문을 수행한 사실이 알려져 이해 상충 문제로 자진 철회했다.
이번에도 윤순진 후보와 류영재 후보가 주주총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KB금융지주의 지분구조로 볼 때 외국인 주주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경영 불안정 등을 이유로 노조의 경영 참여를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6월 말 기준으로 KB금융지주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9.97%)이고 JP모건체이스(2019년 12월 말 기준 6.40%)와 우리사주조합(1.22%)이 뒤를 잇고 있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때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외국인투자자가 KB금융지주 지분의 6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을 때도 주요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지지를 얻었음에도 부결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