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 기자 esdolsoi@businesspost.co.kr2020-06-01 14: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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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기 위한 기업결합심사를 받으면서 아이스크림 인상 등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공정위가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 제한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빙그레는 빙과업체가 아이스크림 가격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시장구조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빙그레(위쪽)와 해태 기업로고.
1일 빙과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의 기업결합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데 아이스크림 가격과 관련한 시정조치를 검토하면서 순탄치만은 않게 진행되고 있다.
빙그레는 4월 해태제과로부터 해태아이스크림을 14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국내 빙과시장은 롯데제과와 빙그레, 롯데푸드, 해태아이스크림 등 4곳의 과점 형태로 이들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87%에 이른다.
이 가운데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이 합병하게 되면 시장 점유율(단순합산) 42%로 단일사업자로는 1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공정위가 같은 계열사라면 하나의 사업자로 분류하는 만큼 빙그레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 '롯데제과+롯데푸드(시장 점유율 45%)',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시장 점유율 42%)'의 양강구도로 재편되는 것이다.
공정위는 독과점을 판단하는 여러 기준 가운데 1개 사업자가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지와 상위 사업자 3곳의 시장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일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분류해 독과점 심사를 진행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더라도 특별히 기존 빙과시장에서 독과점이 심각해진다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공정위는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단일 사업자가 새롭게 등장하는 만큼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강체제’로 빙과시장이 재편되면 아이스크림 가격 담합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는 점도 주된 심사내용이다.
아이스크림 가격을 올리거나 제품 출고량을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지닌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는 만큼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의 기업결합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빙과사업은 설비투자 및 유통망 구축이 중요한 사업으로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는 점도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의 기업결합심사를 꼼꼼히 살펴보는 이유로 꼽힌다.
다만 국내 빙과시장이 점차 침체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가격 인상 제한조치 등을 담은 조건부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우려가 있지만 시장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은 만큼 인수합병에 따른 효율화방안을 허용해주면서도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담는 것이다.
최근 공정위가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LG유플러스와 CJ헬로, 전력케이블용 소재 고압반도전시장 1.2위 업체인 보레알리스아게와 디와이엠솔루션 기업결합심사 등에서 가격 인상 제한 및 공급 의무화 등의 시정조치를 내린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에 대응해 빙그레는 이미 롯데 계열사(롯데푸드+롯데제과)라는 사업자가 있는 상황에서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더라도 기존 시장질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빙과시장에서 아이스크림 가격은 유통업체들이 좌우하는 구조인 만큼 빙과업체에게 가격 인상 제한조치를 두더라도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점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국내 빙과시장이 빙과업체가 가격 결정권을 지니고 있지 않은 왜곡된 시장구조인 만큼 과도한 제한은 앞으로 빙과사업을 펼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빙과시장은 2010년 오픈 프라이스제가 도입된 뒤 판매자들이 가격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장으로 고착돼왔다. 오픈 프라이스란 최종 판매자가 상품가격을 정하는 방식이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반값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80% 할인’, ‘아이스크림 1+1’ 등 이른바 미끼 상품이 되버린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게 된 이유다.
이런 시장구조 속에서 빙과업체들은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며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아이스크림 ‘제값’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빙과업체들은 2016년과 2018년, 2019년 3차례에 걸쳐 가격정찰제 도입을 꾀했지만 소매점주와 소비자들의 반발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격정찰제란 아이스크림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는 것이다.
빙과업체가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더라도 소비자 가격 결정권은 여전히 아이스크림 유통의 80%가량을 쥐고 있는 슈퍼마켓 등 유통업체들에게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빙그레가 그동안 가격정찰제 도입 등 '아이스크림 가격 정상화'에 가장 앞장섰던 빙과업체였던 만큼 시장 지배력이 커졌을 때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에 공정위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품의 ‘제값’을 알 수 없는 국내 빙과시장의 기형적 구조에서 ‘가격 정상화’가 소비자들에게는 가격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