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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외국은행단(FBG) 초청 금융위원장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특히 대기업집단의 경우 이번 규제완화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인터넷은행 설립에 참여하면서 금산분리 규제의 빗장이 완전히 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의 요구와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필요성 등으로 임 위원장의 목소리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임종룡, 금산분리 규제 지킬 수 있나
금융위가 마련한 은행법 개정안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의결지분 취득제한을 기존 4%에서 50%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위는 대신 총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을 은행법 개정안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임종룡 위원장은 “인터넷은행은 과점적 양상을 보이는 은행의 영업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방안”이라며 “정보통신기술(ICT)기업뿐 아니라 유통이나 통신분야 대기업이 참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예외로 둬도 금산분리 규제의 기본원칙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 위원장은 “인터넷은행 도입을 금융개혁 차원의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며 “현재 은행법 아래서 올해 안에 예비인가를 받을 인터넷은행들의 서비스를 보면 기업의 사금고화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윤수 금융서비스국 은행과장은 최근 “금산분리 원칙은 일반은행에 대해서 계속 유지되며 인터넷은행에 한해 예외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라며 “대기업은 규제 완화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은행의 사금고화 문제도 사전에 차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바라는 대기업들
대기업은 금산분리 규제완화의 대상이 아닌데도 인터넷은행 설립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금산분리 규제완화를 대기업에게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할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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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규 KT 회장. |
KT는 인터넷은행 설립을 준비하는 대표인 대기업이다. KT는 현행법에 맞춰 인터넷은행 설립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하면 지분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런데 KT는 총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의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인터넷은행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KT는 ‘오너 없는 대기업집단’이라는 점을 내세워 예외를 적용받는 방안을 금융위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는 대기업에 대해 현재 금산분리 규제를 유지하려 하지만 KT처럼 주인 없는 기업이 같은 규제를 적용받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며 “KT가 이런 점을 감안해 인터넷은행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등 일부 대기업도 KT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오너로 두고 있지만 KT가 금산분리 규제에서 예외가 인정될 경우 통신분야의 기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역시 예외를 요청할 수 있다.
일각에서 롯데그룹 등이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터넷은행 설립에 뛰어들 수 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대기업집단이 인터넷은행 설립에 참여할수록 금산분리 규제완화 범위를 넓혀달라는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요구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반은행에 대해서도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번질 수 있다.
조정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최근 “삼성전자가 획기적 모바일 시스템을 개발했다면 금융산업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 큰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높이면서 사금고화 방지책과 은행 라이선스 부여 강화 등을 함께 시행하는 쪽이 좋다”고 말했다.
◆ 우리은행 민영화와 금산분리 규제완화
임 위원장이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임 위원장은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지 않겠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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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구 우리은행장. |
임 위원장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은행을 민영화하기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현재 은행법에서 정한 소유구조의 테두리 안에서 민영화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우리은행 지분을 4~10%씩 분산매각해 과점주주 체제를 만들 경우 금산분리 원칙을 깨지 않고도 민영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점주주 분산매각 방식을 채택한다 해도 경영권을 행사할 지분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임 위원장이 우리은행의 5번째 민영화 시도에 성공하려면 금산분리 규제를 더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아부다비투자공사(ADIC)를 비롯한 중동 국부펀드 3곳에 우리은행 지분을 팔기 위한 실무협상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중동 국부펀드들은 우리은행 과점주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부다비투자공사는 올해 초 우리은행과 접촉했을 때 경영권을 행사하는 조건 아래 지분을 매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금산분리 규제완화에 대한 요구가 나올 수 있다.
만약 우리은행 지분매각에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려고 할 경우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공적자금 투입 은행의 민영화 방안’이라는 논문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조속히 민영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민영화를 빠르게 이루려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