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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1일에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 |
세계 미술경매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5월 초부터 열린 세계 양대 경매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연일 세계 경매 최고가가 경신되고 있다.
지난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세계 최고가 미술품이, 12일 제네바 소더비 경매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루비가 탄생했다.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1억7937만5천 달러, 미얀마산 루비 반지는 3030만 달러에 팔렸다.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세계 경매 미술품 최고가를 갈아치웠을 때 시장은 반응은 ‘역시 피카소’였다.
작품의 가격 상승세는 놀랍지만 피카소의 작품이 1위를 차지한 데 대해 예상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미술품시장에 왜 뭉칫돈이 몰리는 것일까?
◆ 미술품 경매시장의 투톱, 피카소와 자코메티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지난 11일 열린 크리스티 경매의 이브닝 세일에서 5명의 전화 응찰자가 피카소의 그림을 차지하기 위해 11분 동안 경합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1955년 작품인 유화 ‘알제의 여인들’은 1억7936만5천 달러에 낙찰돼 18년 만에 가격이 5.6배 뛰었다. ‘알제의 여인들’은 1997년 크리스티에서 3190만 달러에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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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미술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
지금까지 역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는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였다. 이 그림은 2013년 11월 같은 장소에서 카지노 재벌 일레인 윈에게 1억4240만 달러에 팔렸다.
피카소의 작품이 불과 1년6개월 만에 최고가 기록을 깬 데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피카소의 작품은 세계적 부호와 미술 애호가들의 단골 사냥감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은 1억 달러의 장벽을 깼다. 2010년 5월 피카소의 ‘누드, 녹색잎과 흉상’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648달러에 팔려 2년 동안 세계 최고가 자리를 차지했다.
미술품 경매 톱10은 회화작품이 7점, 조각작품이 3점을 차지하고 있다. ‘알제의 여인들’이 1위를 차지하면서 피카소작품은 톱10에 4점이나 이름을 올렸다.
회화작품 중에서 2위로 내려간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1억4240만 달러)와 앤디 워홀의 ‘실버 카 크래시’(1억544만 달러, 6위)를 제외하면 모두 피카소 작품이다.
2010년 1위를 차지했던 ‘누드, 녹색잎의 흉상’(1억648만 달러)이 5위, ‘파이프를 든 소년’(1억416만 달러)이 8위, ‘고양이를 안고 있는 도라 마르’(9521만 달러)가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톱10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조각가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1억4128만5천만 달러, 3위), ‘걷는 남자(1억430만 달러, 7위), ‘전차’(1억96만 달러, 9위) 3점 모두 그의 작품이다.
◆ 그 비싼 미술품은 누가 살까
2천억 원에 가까운 피카소의 그림은 누가 산 것일까?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을 구입한 낙찰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대부분의 낙찰자는 전화로 경매에 참가하고 신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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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중쥔 화이브라더스 회장 |
그런데 이번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피카소의 ‘소파에 앉은 여인’을 2990만 달러에 낙찰 받은 인물은 실체가 밝혀졌다.
중국 영화제작사 화이브라더스의 왕중쥔(54) 회장이었다. 왕 회장은 1994년 형제와 함께 설립한 화이브라더스를 중국의 3대 메이저 영화사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켰다. 현재 중국에서 갑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왕 회장은 지난해 11월에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정물, 데이지와 양귀비 꽃병'을 6176만5천 달러에 낙찰받았다. 당시 중국인이 해외경매에서 낙찰 받은 서구 예술품으로 최고의 낙찰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왕 회장은 이번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사면서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그에 얽힌 이야기와도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 그림은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 프로듀서인 사무엘 골드윈 주니어의 소장품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 영화제작자인 새뮤얼 골드윈은 1956년 이 작품을 구매해 70여년 동안 소장했다. 그가 지난 1월 사망하자 유족들이 처분을 결정했다.
골드윈 집안은 미국 영화계의 '로열패밀리'로 3대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무엘 골드윈 주니어는 독립영화계의 거장이었고 1974년에 작고한 그의 아버지 사무엘 골드윈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설립자였다. 골드윈 3세대로 파라마운트 영화사 부회장인 존과 ABC 방송사의 '스캔들'이란 프로그램에서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토니가 있다.
왕 회장은 이런 소장자의 안목에 주목했다. 그는 “골드윈 집안은 영화산업에서 전설적”이라며 “나는 이 작품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천재성을 볼 뿐 아니라 사무엘 골드윈의 창의적 비전을 본다”고 말했다.
중국계 갑부들은 최근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월 미술시장 통계업체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14년 미술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경매시장에서 152억 달러(약 16조6700억 원)어치의 작품이 거래됐다.
중국은 경매시장 거래량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에서 56억 달러 어치의 미술품 거래가 이뤘다. 다음이 미국(48억 달러), 영국(28억 달러)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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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더비 경매현장 |
◆ 미술품시장에 뭉칫돈이 몰리는 이유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갤러리의 경매에서 팔린 미술품 총액은 27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5월(22억 달러)보다 23% 증가한 금액이다. 미술품시장의 호황기로 꼽히는 2007년도의 최고 경매액과 비교하면 74% 늘었다.
미술품시장에 이렇게 돈이 몰리는 이유는 글로벌 저금리시대에 갈 곳을 잃은 투자자금이 미술품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이 아닌 '투자수익률'이 그림을 사는 새로운 척도로 급부상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최근 미술품 거래의 3분의 1 정도가 부분적으로 투자목적으로 이뤄졌다. 2년 전과 비교해 투자목적 구매는 2배로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고가 미술품에 부쩍 눈독을 들인다고 지적했다.
미술품은 특히 금과 부동산처럼 물리적 실체가 있는 실물자산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더한다. 무형의 파생상품들이 금융위기의 온상으로 지목된 이후 실물자산 선호가 강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중동의 '오일머니'를 주무르는 큰손들도 미술품 투자에 강한 호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스위스의 개인 소장자 루돌프 슈테린은 프랑스 화가 폴 고갱(1848-1903)의 '언제 결혼하니'를 3억 달러에 비공개로 매각했다. 이 작품은 모든 거래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이 됐다. 매입자는 세계적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카타르 정부로 알려졌다.
변동성이 높은 미술품시장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미술품시장은 열정뿐 아니라 변덕이 잦은 소규모 콜렉터 그룹들이 좌우하는 변동성 높은 시장이라고 경고했다.
미술품은 다른 자산과 달리 환금성이 떨어진다. 마음에 맞는 매입자를 만나지 못하면 거액의 미술품은 거래되기 어렵다. 이뿐 아니라 한 작품이 다른 작품과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미술품시장이 지닌 문제점이다.
미술품이 새로운 '스위스은행'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미술품 시장이 부패로 얼룩져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최고가를 기록한 날 “고가의 미술품을 돈세탁 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이런 거래는 미술품시장의 본질상 조세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개인 미술품 구매자가 100만 달러 이상의 고가 미술품을 현금으로 살 수 있고 이를 등록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에서 자금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
2007년 브라질 은행가였던 에데마르 시드 페레이라는 돈세탁을 위해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림 ‘한니발’을 미국으로 들여오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