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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이 지난 4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 공동취재단> |
“은행이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수익성이 높은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은행들의 해외진출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은행들은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이자수익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하면서 성장세를 유지하는 일도 힘들어졌다.
국내은행들이 앞다퉈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은행들의 해외영업망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2개에 이른다.
국내은행들은 해외에서도 한국 교민과 기업들 위주로 영업한다. 이렇다 보니 현지화에 실패해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
국내은행들이 해외진출에서 성과를 내려면 글로벌 은행들의 성공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스페인 산탄데르은행과 말레이시아 CIMB은행 등 글로벌 은행들은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현지고객을 공략했다.
◆ 해외로 나가는 국내은행들
국내은행들이 최근 저금리 기조로 뚝 떨어진 이자수익을 보충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
국내은행들은 지난해 이자수익으로 34조9천억 원을 거뒀다. 2011년 말 39조1천억 원에서 4조 원 이상 이익이 줄었다. 순이자마진(NIM)율도 1.79%로 역대 최저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연 1.75%로 내리면서 저금리 기조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은행들의 평균금리도 1%대로 급락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한국은행이 5월에 기준금리를 연 1.50%로 내릴 경우 신한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순이자이익이 기존보다 최소 2760억 원에서 최대 6848억 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해 이자수익을 더 이상 내기가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은행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5년 18.42%로 고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3년 말 기준 2.82%까지 떨어졌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은 정책금리를 사실상 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은행들의 예대마진은 3%포인트에 이른다”며 “한국은 기준금리가 연 1.75%인데도 예대마진은 1.7%포인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이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높은 해외국가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아직 은행고객이 많지 않은 신흥국가에 주목하고 있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은행들이 주목하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들의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평균 6.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며 “소비자금융시장의 성장성은 더욱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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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회사 해외진출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금융회사들의 해외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뉴시스> |
◆ 국내은행의 해외실적은 제자리 걸음
국내은행들은 해외진출 속도를 높이지만 아직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해외수익이 전체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편인데도 10%를 넘기지 못했다. 은행권 전체로 따지면 해외수익의 비중은 7.82%에 불과하다.
국내은행들이 해외에서 부진한 실적을 내는 원인으로 현지화 실패가 첫 번째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하반기에 국내 은행 7곳의 해외 현지화지표를 조사했다. 이들 가운데 최고등급인 1등급을 받은 은행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내은행들은 지금까지 주로 한국인이 많이 살거나 한국기업이 모인 지역 등을 중심으로 해외영업망을 구축했다. 이 때문에 현지인 고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일정수준 이상의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은행이 가장 많이 진출한 베트남의 경우 4천여 개의 한국기업이 현지에서 일하고 있다. 국내은행들은 지금까지 이들이 모인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영업망을 구축했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영업점은 아직 극소수다.
국내은행들이 해외문화와 금융환경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 금융권에서 한국 은행들이 현지법인장을 한국인으로 임명하는 일을 놓고 화제가 될 정도다. 다른 외국계 은행들은 대부분 중국인을 법인장으로 두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은행이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영업망을 늘리고 자금지원을 하는 일만으로 부족하다”며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고 있는 현지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산탄데르와 CIMB는 어떻게 해외에서 성공했나
국내은행들은 성공적 현지화를 이룬 해외은행들을 연구하고 있다.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은 인수합병으로 해외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산탄데르은행의 글로벌 경영전략이 하나금융을 세계적 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데 시사점을 준다”고 평가했다.
산탄데르은행은 현재 유럽, 미국, 중남미 등에 약 1만4천 개의 영업점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고객만 1억 명이 넘는다. 지난 1분기 전체 순이익 가운데 73% 가량을 해외에서 올렸다.
에밀리오 보틴 전 산탄데르은행 회장은 생전에 약 130개의 해외 금융회사 인수를 주도했다. 본사에서 간부를 파견하는 대신 현지 경영인을 선임하는 관행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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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 보틴 산탄데르은행 회장 |
산탄데르은행은 보틴 전 회장의 말에 따라 해외은행을 인수한 뒤 기존법인을 그대로 두고 있다. 인위적 합병이 없어 갈등이 덜하고 현지문화에도 적응하기 쉽다는 것이다.
장녀인 아나 보틴 현 회장도 이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말레이시아 CIMB은행도 해외은행 인수합병을 통해 수익성 개선에 성공했다.
CIMB은행은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신한은행의 현지화 전략을 추진할 때 벤치마킹 사례로 참고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CIMB은행은 동남아시아지역을 위주로 1080개의 영업점을 둔 글로벌 은행이다. 해외에서 확보한 고객만 1350만 명에 이른다.
CIMB은행의 자산 규모는 2013년 기준으로 120조 원이다. 신한은행의 자산 238조 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CIMB은행은 2013년 순이익 1조4천억 원 이상을 거뒀다. 이는 신한은행이 그해 낸 순이익 1조3731억 원보다 더 많다. CIMB은행은 순이익의 40% 이상을 해외에서 냈다.
나지르 라작 CIMB은행 회장은 해외은행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모든 국가에서 현지인력이 해외법인을 운영하는 방안을 고수했다.
라작 회장은 문화권이 비슷한 동남아시아국가에 진출해 ‘규모의 경제’에 따른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략을 펼쳤다.
라작 회장은 동남아시아 국가 고객들의 상당수가 이슬람교도라는 점을 고려했다. CIMB은행은 해외법인을 통해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이슬람 관련 금융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CIMB은행은 이런 전략에 힘입어 말레이시아은행 가운데 이슬람 채권 ‘수쿠크’를 가장 많이 발행하는 곳으로 떠올랐다.
라작 회장은 올해 초 “CIMB은행의 성장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중시했다”며 “아시아는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만큼 한국 등 동남아시아 밖의 국가로도 영업망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계속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