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가 가상화폐 열기로 뜨겁다.
김병진 씨티엘 회장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도 있는 일이다. 김 회장은 ‘퍼스트무버’가 되겠다며 2013년 이미 국내 게임회사 최초로 가상화폐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본업이 받쳐주지 못해 백일몽으로 끝났다.
그는 세계 최초의 '수수료 월정액제 거래소'로 다시 가상화폐시장을 노리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가상화폐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은 게임업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넥슨과 엠게임, 파티게임즈, 한빛소프트 등이 차례로 가상화폐시장에 뛰어들었다.
김 회장도 이 열풍에 올라탔다. 씨티엘과 관계사 라이브플렉스는 최근 게임과 연계한 가상화폐사업 계획을 밝혔다. 두 회사는 모두 김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다.
이 계획은 가상화폐 ‘비트지코인’ 개발 및 100억 개 발행, 이더리움 기반 기상화폐인 크립토마블 발행, 그리고 세계 최초의 월 정액제 가상화폐거래소인 ‘코인마블’ 설립 등을 뼈대로 한다.
비트지코인은 기존 코인들과는 다르게 게임 이용자와 지식인 서비스 답변 등을 통해 채굴할 수 있다. 거래소 ‘코인마블’의 경우 씨티엘과 라이브플렉스가 합자회사 ‘크립토컴퍼니’를 설립해 준비하고 있는데 거래수수료를 정액제로 해서 이용이 가능하다.
씨티엘 관계자는 “크립토컴퍼니는 자본금 30억 원, 자기자본 100억 원의 재원을 확보해 안정적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거래소 해킹 등에서 고객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충분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크립토컴퍼니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2013년 말에도 비슷하게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당시 그는 라이브플렉스를 통해 국내 최초의 비트코인 ATM(현금인출기) 도입, 역시 국내 최초로 온라인의 비트코인 거래시스템 개발 및 운영, 비트코인 거래소 개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이브플렉스 게임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가상화폐사업도 중단되고 말았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김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여러 번 쓴 잔을 마셨다.
김 회장은 레저용 텐트 등 아웃도어사업을 하던 라이브플렉스 지분을 2006년 개인적으로 사들여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후 게임사업을 시작해 틈새시장을 노리고 성인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퀸스블레이드’ 등을 출시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2012년에는 1년 동안 게임 100여 종을 론칭하고 모바일게임분야에 1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나 게임 업황 악화로 3년 동안 출시한 게임이 10종에 그쳐 결과적으로 공수표를 날렸다.
라이브플렉스는 2014년부터 게임사업을 대부분 접고 다시 레저용 텐트 등 아웃도어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퍼블리싱 서비스를 하는 자회사를 남겨두긴 했지만 이마저 차츰 비중이 줄어 지난해 3분기에는 매출이 아예 없었다.
씨티엘도 본업은 LED 제조다. 2015년 김회장이 이 회사 지분을 개인적으로 인수한 이후 자회사 더블럭게임즈를 세워 소셜카지노사업을 시작했으나 더블럭게임즈는 쭉 적자를 보고 있다.
2016년에는 ‘포켓몬GO’가 인기를 끌자 김 회장이 더블럭게임즈를 통해 증강현실(AR) 게임 ‘AR파이터’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주가가 급등했지만 기술적 어려움과 시장성 하락을 이유로 결국 계획을 접었다.
화려한 청사진을 약속했다가 뒤로 물리는 일이 여러 번이다보니 이번 사업계획을 두고도 미심쩍다는 반응이 없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씨티엘이나 라이브플렉스나 게임사업을 한 적이 있긴 해도 지금은 주력이 아니고 가상화폐사업도 경험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당장 계획을 보면 듣기에는 좋지만 과연 그대로 되겠느냐는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임사업은 아이템의 손쉬운 결제, 블록체인을 활용한 거래사기 예방, 현실세계에서 게임화폐의 가치화 등 가상화폐로 시너지를 볼 수 있는 경로가 많다. 그러나 정부규제와 가상화폐의 가치 변동성 등 불확실성도 도처에 놓여있다.
씨티엘과 라이브플렉스가 가상화폐를 개발하고 발행할 기술력이 있느냐 하는 점을 두고도 회의적 시선들이 있다.
김병진 회장은 4년 전 한 인터뷰에서 “17년여 간 사업을 해오며 1990년대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을 코 앞에서 지켜봤는데 비트코인은 인터넷 이후 다시 찾아올 시대 변화의 핵심"이라며 가상화폐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꿈을 말했다.
접었는가 했던 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점을 봐도 김 회장이 가상화폐사업에 지닌 미련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꿈이 이번에도 '공수표'로 끝날까?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