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6월] 라면 한 개 2천 원, 제발 숲을 보기 바란다

▲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값 2천 원’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라면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물가를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 Freepik >

[비즈니스포스트] 2011년 농심은 ‘신라면 블랙’을 1600원이라는 가격표를 붙이고 출시했다. ‘우골보양식사’라는 타이틀로 라면이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당시 국내 라면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농심은 ‘신라면’에 이은 메가 후속타를 고민하던 차였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우골을 듬뿍 함유하고 있어 설렁탕 한 그릇 분량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담았다는 농심의 주장에 설렁탕 가격주인들이 들고 있어날 판이었다. 특히 당시 780원 정도했던 신라면 가격의 두 배에 소비자들은 아연실색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1천 원이 넘는 라면이라니…”, “농심이 배가 불렸군”, “이 가격에 사 먹을 바에는 차라리 설렁탕을 먹겠다” 등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언론도 앞장서서 신라면 블랙과 농심을 융단폭격하기 시작했다. 신제품 출시를 빌미로 라면 가격을 올리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에서부터, 서민들의 쌈짓돈을 털어 잇속을 챙긴다는 식의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결국 농심은 출시 5개월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그렇게 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졌던 신라면 블랙은 외국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 600여 개의 라면을 먹어보고 시식 후기를 블로그 ‘라면 레이터’에 올리는 미국인 한스 리네쉬라는 남성이 신라면 블랙에 대해 “‘5점 만점에 4.75점을 주겠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라면 톱 10’에 신라면 블랙을 7위로 꼽았다. 

농심은 신라면 블랙을 국내보다는 해외 판매에 초점을 맞췄고, 그 해 12월까지 해외시장에서 약 400만 개가 팔려 당시 약 85억 원의 판매실적을 거뒀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컵라면을 먼저 출시하고, 이어 봉지라면으로 재출시됐다. 가격은 1500원으로 조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며칠 전에 언급한 ‘라면 2천 원’ 발언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최근에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고 한다. 라면 한 개에 2천 원 한다는데 진짜냐”라고 말했다. 이에 김범석 기획재정부 차관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맥주, 라면같은 가공식품 식품 위주로 많이 올랐다”고 답변했다. 

라면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라면 중 가격이 2천 원이 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라면값이 오르긴 했지만 대부분 제품은 대형마트에서 900원 안팎이면 살 수 있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의점 판매가도 1천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라면가격을 거론하면서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낙인찍힐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라면업계는 올라간 라면 가격을 다시 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반영하지 않은 인건비, 환율 문제, 원자잿값 상승분의 일부만 가격에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영업이익률이 5% 채 되지 않는다며, 라면 팔아서 남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다만 이 대통령의 발언이 라면 가격만 콕 집어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인 가공식품의 물가 상승을 지적한 것으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즉 라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기 불황에 물가만 오르는 것은 서민경제에 치명타이므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라면은 국민 1인당 연간 70개 넘게 소비할 정도로 흔히 먹는 식품이다. 하지만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천 분의 2.4에 불과하다. 시쳇말로 가계 살림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더구나 지금은 70년대처럼 가난해서 먹는 식품도 아니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라면 가격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 보다는 ‘가장 서민적 음식’인 라면을 들어 전체적인 식품 물가에 대해 지적한 것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여하튼 이 대통령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농심 주가는 당일 4.64% 내린 데 이어 다음날에도 0.62% 빠지면서 주당 40만 원선이 무너졌다. 다행히 11일에 전일대비 2500원 오르며 40만 원선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12일 다시 40만 원 아래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2천 원발(發) 유탄이 마무리되면 급격한 주가 하락이 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정부가 물가 안정에 노력하는 것은 숙명(宿命)이고, 당연한 책무(責務)다. 다만 정확한 진단과 합리적인 처방이 아니라면, 정부의 개입이 경제 전반에 도리어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라면 가격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벌은 소비자의 외면이다. 그리고 그 처벌에 대한 몫은 오롯이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가격담합은 막고 징치해야 하지만, 날림 처방의 가격 규제는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장원수 소비자&4차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