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가 비약적인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자본시장 안팎에서 나온다. 사진은 김 대표가 2022년 5월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新)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축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슬아 대표는 이커머스 업계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자금조달에 사실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기업공개 계획은 진전이 없고 외부투자를 받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손익 개선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들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흑자 전환만으로는 과거의 비약적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컬리 안팎의 취재를 종합하면 컬리의 대규모 투자가 앞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자본시장 관계자 사이에서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컬리에 추가로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누가 있겠냐” “기존투자자 마저도 컬리의 상황을 풀 수 있는 해법이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컬리 최대주주인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이와 관련해 컬리 투자를 주도한 관계자들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2021년 말 컬리의 기업가치를 4조 원으로 보고 2500억 원을 투자했다. 2023년 4월에도 1천억 원을 추가로 넣었는데 총 3500억 원을 회수할 방안이 현재로서 마땅치 않다는 것이 관계자를 질책한 주된 이유로 꼽힌다.
컬리가 외부투자를 받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는 시각이 자본시장에 넓게 번져 있다.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 급성장한 컬리가 앞으로 과거 수준의 성장세를 지속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실제로 컬리는 2023년과 2024년에 성장성에 한계를 드러냈다.
컬리는 2023년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2조774억 원을 냈다. 2022년과 비교해 매출이 2.0% 늘었다. 2020년 123.7%, 2021년 63.8%, 2022년 30.5%와 비교해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상황도 마찬가지다.
2024년 1~3분기 컬리가 거둔 매출은 1조6322억 원이다. 2023년 같은 기간보다 5.6% 늘어난 것으로 통계청 기준 온라인쇼핑 거래액 증가율인 3.0%를 넘지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보기는 힘든 수치다.
컬리가 예전과 같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로 꼽히는 지점은 여러 가지다. 이미 온라인쇼핑 관련 경쟁사들의 구도가 쿠팡과 네이버 등 양강체제로 굳어졌다는 점이 그 중 하나다.
컬리 관계자는 “쿠팡과 컬리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통업계에서 성장한 기업을 찾기 힘들다”며 “예전과 같은 성장률을 보이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긴 힘들지만 과거보다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의 성장을 저평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컬리의 투자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는 점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기업공개 실패와 외부투자 유치 난항에 따라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급격한 사세 확장에 투자할 힘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의 한 관계자는 “컬리가 수년 전까지 이커머스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큰 폭의 매출 성장 덕분이었다”며 “이런 성장 속도를 뒷받침했던 것이 외부투자였는데 앞으로 컬리의 자체 자금만으로 과거만한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컬리가 회사 설립 이후 외부에서 받은 투자자금은 모두 9천억 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컬리는 물류센터 설립 등으로 사세 확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 컬리에 투자했던 투자자 사이에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시각이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은 과거 배우 전지현씨가 출연한 컬리 광고 이미지. <컬리>
김슬아 대표가 과거 기업공개에 힘을 쏟았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 대표는 기업공개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미래를 위한 투자자금으로 활용하려고 했지만 2022년 말~2023년 초 자본시장의 분위기가 얼어붙으면서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장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외부투자자에게 평가받았던 기업가치가 최대 4조 원이지만 시장에서 평가받았던 가치는 1조 원 안팎이었다는 점이 김 대표가 기업공개 문턱에서 발을 돌린 이유로 꼽힌다.
현재 상황은 더 악화했다. 컬리 시가총액은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주가 기준으로 현재 3500억 원 안팎이다.
김 대표 입장에서도, 외부투자자 입장에서도 컬리의 기업공개를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힘든 수준으로 여겨진다.
김 대표가 손익 개선에 주력하는 것은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흑자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세워야만 다음 기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2023년 5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임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열어 “이럴 때일수록 외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컬리가 보인 행보는 모두 손익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결과 컬리는 지난해 1분기 별도기준 영업이익 5억 원을 내며 창사 9년 만의 첫 분기 영업손익 흑자를 기록했다. 이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 기조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컬리는 설립 이후 2024년까지 연간 실적 기준으로 단 한 차례도 영업이익을 내지 못했다.
자본시장의 한 관계자는 “컬리는 폭발적 성장을 유지할 만한 기회와 관련해 사실상 실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쿠팡처럼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뒤 이를 바탕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기업공개도, 외부투자 유치도 모두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컬리 관계자는 “퀵커머스 컬리나우와 뷰티 전문관 뷰티컬리 등과 관련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이 감원을 하는 흐름 속에서도 컬리는 대규모 채용을 이어가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흑자전환 노력과 미래를 위한 투자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