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구에서부터 제트 엔진까지. 에디슨의 회사로 출발한 GE는 100여 년 넘게 미국 경제 엔진의 피스톤 역할을 해왔다. GE보다 미국의 산업 발전에 더 많은 영향과 공로를 끼친 회사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으로 뛰어올랐지만, 2000년 무렵엔 GE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몸값이 비싼 회사였다. 그 직후인 2001년 9월, 잭 웰치 후임으로 GE 사령탑에 오른 이가 제프 이멜트(사진)였다. |
[비즈니스포스트] 어느 날 갑자기 카산드라(Cassandra)가 여러분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니 카산드라를 외면하거나 내치지 말기를 바란다. 카산드라가 떠나가지 않도록 잘 붙드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조직의 리더라면 더욱더 그렇다.
카산드라의 정체가 궁금할 법도 하다. 그런 카산드라의 이름에서 비롯된 ‘카산드라 콤플렉스(Cassandra Complex)’란 게 있다. 이는 부정적인 정보를 회피하고 싶은 심리를 말한다. 이 용어가 생겨난 스토리는 이렇다.
카산드라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왕의 딸이다. 아폴론 신으로부터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부여받은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미움을 사게 된다. 그런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예지력을 누구도 믿지 않게끔 저주를 건다. 저주의 결과는 끔찍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목마’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는 그녀의 예언대로 멸망하고 만다.
신화 속 이야기를 기업으로 바꿔보자면, 카산드라는 조직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첨병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 카산드라는 내부 조직원일 수도, 외부의 멘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개 나쁜 정보나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의 리더는 카산드라의 말을 무시하는 ‘카산드라 콤플렉스’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일찍이 인텔의 위대한 경영자 앤드류 그로브(1936~2016)는 “카산드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한 바 있다. 그는 “때때로 카산드라는 나쁜 소식뿐 아니라 통찰력과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전달해 준다”(앤드류 그로브 저,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부키)는 말로 카산드라의 존재를 귀하게 여겼다.
먼저 이번 칼럼의 핵심은 카산드라임을 밝혀둔다. 필자가 ‘카산드라 콤플렉스’ 사례로 꼽고 싶은 이가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통상 제프 이멜트·68) 전 회장이다. 잭 웰치에 이어 16년(2001년 9월~2017년 6월) 동안 거대한 기업집단 GE를 이끌었던 이멜트는 분명 걸출한 기업인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멜트가 GE를 떠난 1년 뒤인 2018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멜트의 리더십 이면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GE의 전·현직 임원 및 투자자, 회사와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이멜트가 나쁜 뉴스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것이다.
심지어 한 유력 잡지는 헤이트(hate)라는 단어를 넣어 ‘이멜트가 나쁜 뉴스를 아주 혐오한다(Jeffrey Immelt Hated Bad News So Much: Inc.com)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이멜트가 주위나 아랫사람으로부터 나쁜 뉴스는 제쳐두고 듣고 싶은 뉴스만 듣는, 이른바 ‘선택적 경청’을 했다는 얘기다. WSJ은 “나쁜 뉴스를 거부하는 문화는 잘못된 전략을 초래한다”며 리더십 편향(leadership bias)을 지적했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알렉스 에드먼스 교수에 따르면, 리더가 리더십 편향을 갖게 되면 결과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GE 조직원들에게 이멜트의 그런 성향(나쁜 뉴스 외면)은 마치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와 같다.
방 안의 코끼리? 이 개념은 모두가 잘못됐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워 아무도 말하기를 꺼리는 상태나 주제를 말한다. 아랫사람들이 상사의 눈치와 심기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나쁜 뉴스를 전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라면 조직을 위해 스스로 ‘방 안의 코끼리’를 몰아내 줘야 한다.
▲ 제프 이멜트와 그의 어록. 그가 GE를 떠난 후 언론에선 그가 ‘나쁜 뉴스를 듣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선택적 경청’을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는 경청을 무시(ignoring), 듣는 척(pretending), 선택적 경청(selective listening), 세심한 경청(attentive listening), 공감적인 경청(empathetic listening) 등 5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
혹자는 ‘CEO가 나쁜 뉴스를 듣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회사에 큰 해를 끼치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GE 내부자들이 말하는 상황은 심각했다. CEO가 나쁜 뉴스를 듣지 않으면서 ①비현실적인 재정적 목표 ②시의적절하지 못한 인수 ③회사 현금의 잘못된 관리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리더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이 말을 곱씹어 봐야 한다.
“때때로 CEO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쁜 뉴스’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절대 나쁜 뉴스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종말의 시작이다 (that is the beginning of the end)”.
이멜트와 대비되는 CEO 사례 하나를 보자. 주인공은 빌 게이츠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었던 스티브 발머. 스탠퍼드대 최초의 한국인 종신교수 황승진 박사가 최근에 펴낸 ‘경영이라는 세계’(다산북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임원이 CEO 스티브 발머에게 좋지 않은 뉴스를 보고할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임원은 ‘이걸 어떻게 이야기 하나’ 걱정하며 밤잠을 설쳤다. 발머가 불같은 성격의 CEO였기에 임원은 에둘러서 보고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음 날 보고하는 자리. 발머가 그 임원에게 던진 첫 마디는 의외였다.
“앉게, 우리 나쁜 뉴스부터 하지.”
이 말에 그 임원은 곧바로 나쁜 뉴스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스티브 발머는 좋은 뉴스, 나쁜 뉴스를 가려서 듣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황승진 박사는 “직원들이 나쁜 뉴스는 감추고 좋은 뉴스만 전달한다면 그런 조직에서 리더십의 결과는 뻔하다”고 꼬집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멜트(다트머스대 출신)와 발머(하버드대 출신)는 대학 졸업 후 P&G에 입사해 신입사원으로 잠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인연이 있다.
나쁜 뉴스를 전하는 카산드라 얘기는 잠시 뒤로 하고 GE 내부 역사를 좀 들여다보자. 이멜트의 ‘16년 집권’은 퍼펙트 스톰이 몰아친 혼란의 시기였다.
그가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른 날은 9·11 테러 하루 전인 2001년 9월 10일이었다. 테러 여파로 GE의 보험사업과 제트 엔진 분야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씨름으로 치자면 이멜트는 샅바를 잡기도 전에 ‘밭다리 걸기’에 휘청했다. 운이 나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 해인 2002년 7월엔 세계 통신업계의 거인 월드컴(MCI WorldCom)이 파산했다. 이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전까지 최대 규모였다. 거기다 금융서비스업, 특히 그룹의 돈줄이던 GE캐피탈에 대한 의존이 큰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닥쳤다.
GE의 수익은 악화되고 주가는 끝 모르게 빠져나갔다. 더 나아가 2015년 프랑스 다국적 기업 알스톰의 전력 부문을 106억 달러에 인수한 건 ‘GE의 재앙’이었다는 가혹한 평가도 나왔다.
그렇게 2017년 6월 이멜트는 등 떠밀리듯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멜트 후유증’은 심상치 않았다. 새 CEO로 선임된 존 플래너리는 1년 만에 짐을 쌌다. 그러는 사이 GE는 10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다우존스지수에서도 퇴출됐다.
▲ 제프 이멜트가 GE 회장으로 있는 동안 GE의 주가는 장기적으로 내려앉았다. 그런 그의 ‘16년 재임’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델라웨어대 기업 거버넌스 센터의 찰스 엘슨 교수는 “수년간 주가 실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고려할 때 가장 놀라운 점은 이사회가 이멜트를 교체하기 위해 더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플래너리에 이어 후임자로 로렌스 컬프가 발탁됐는데 GE 130년 역사에서 첫 외부 인사 영입이었다. 로렌스 컬프는 ‘린(lean) 경영’ 신봉자로 비대한 GE의 조직을 바꿔나갔다. 2023년 11월부터 GE의 분할 작업이 시작됐고 올해 4월 마무리됐다. 그 결과 GE는 GE 헬스케어, GE 에어로스페이스, GE 베르노바 3개 회사로 쪼개져 새롭게 출발했다.
필자는 GE가 덩치를 줄여 날씬하게(lean) 변했지만 그 명성과 가치가 퇴색할 것이라 보지 않는다. 공과상반(功過相半- 잘한 일과 못한 일이 반반)이라 했다. 이멜트에 대한 평가 또한 폄훼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CEO 자리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법이니.
이멜트는 “오래도록 건재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성과,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능력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실상 GE의 재창조는 이멜트가 아니라 로렌스 컬프의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시 카산드라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멜트가 GE를 떠난 2년 뒤인 2019년 8월엔 GE의 회계 부정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 금융 분석가가 “최소 380억 달러(약 46조 원)의 분식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다.
GE 측은 “완전한 거짓”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언론들은 앞서 2001년 12월 회계 부정으로 파산한 에너지 대기업 엔론(Enron)에 빗대 GE를 ‘젠론(GEnron)’이라 비꼬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과거 엔론엔 추악한 회계 부정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조직의 위험 신호를 미리 알리는 카산드라가 존재했다. 엔론 부사장이었던 쉐론 왓킨스(Sherron Watkins)였다. 왓킨스가 회사의 사기 행각을 발견한 건 파산 4개월 전 무렵이다.
그녀는 회장인 케네스 레이에게 사태를 경고하면서 ‘엔론이 회계 스캔들에 휩싸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익명의 메모를 보냈다. 하지만 회장과 경영진은 그 ‘나쁜 뉴스’에 귀를 닫았다. 왓킨스는 경영진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마치 트로이 사람들이 카산드라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를 통해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상장 기업 엔론은 파산했다. 거기다 엔론의 회계를 감사했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 당시 세계 5대 회계법인 중 하나)까지 무너졌다.
대중들에게 ‘엔론 내부고발자’로 알려지게 된 왓킨스는 “문제는 대개 성공할 때 발생한다(Problems usually happen in successful times)”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런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프 이멜트(나쁜 뉴스 듣기를 싫어한 전 GE CEO), 앤드류 그로브(카산드라를 귀하게 여긴 전 인텔 CEO), 케네스 레이(카산드라의 말을 무시한 전 엔론 CEO) 그리고 쉐론 왓킨스(엔론의 전 부사장 겸 카산드라). 이 네 명을 묶으면 기업 경영에서 ‘카산드라 콤플렉스’ 이야기가 완결된다.
다시 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조직의 리더인 여러분에게 카산드라가 찾아간다면?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