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종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한국시각으로 2일 새벽 3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 방향 전환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물가 목표치 ‘2%’를 달성하는 데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한 말이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지연 가능성에 하반기에도 국내 금리를 쉽사리 내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파월 의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선을 그으며 올해 사실상 금리 인하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는 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국내 통화정책 전환 시기를 저울질하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고민이 한층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날 증권가 전망을 종합하면 연준이 5월 FOMC에서 여전히 높은 물가 흐름에 현재 수준의 금리를 유지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시점이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첫 인하 시점은 3분기 말인 9월이 현실적이다”고 내다봤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파월 의장의 발언을 고려한다면 6월 점도표에서 올해 금리 인하 폭이 0.75%포인트에서 0.5%포인트로 축소될 것”이라며 “금리 인하 시점은 현실적으로 7월보다는 9월로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이처럼 시장의 예상과 같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린다면 이 총재 역시 국내 기준금리를 쉽사리 내리지 못할 가능성 크다.
올해 들어 이 총재가 연준의 통화정책으로부터 각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이 커졌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사상 최대치로 확대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선제적 금리 인하는 쉽지 않은 카드로 여겨진다.
이날 연준이 금리를 연 5.25~5.50%로 6회 연속 동결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사상 최대치인 1.75~2%포인트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먼저 금리를 내린다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또 다시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지수가 3개월 만에 다시 2%대로 낮아졌다는 점은 이 총재에게 큰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9(2020년=100)로 지난해 4월과 비교해 2.9% 증가했다. 올해 2월과 3월 연속으로 3.1%에 머물다가 3개월 만에 2%대로 둔화했다.
이 총재는 그동안 물가 안정을 이유로 고금리 상황을 유지해왔다.
고금리에 기업 대출 연체율이 오르고 가계부채 부담도 커지는 상황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대로 다시 낮아졌다는 점은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다.
다만 아직 물가 상승률이 2%대 목표 수준에 충분히 수렴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은 금리 인하를 미루는 방어 논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한국은행은 유가 추이 및 농산물 가격 강세 지속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평가한다”며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헤드라인 물가 전망 상향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고 예측했다.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 뒤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
금융당국도 이날 연준의 금리 결정 이후 연달아 회의를 열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해외 출장 중에 화상으로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 등과 함께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연준의 이번 FOMC 결과 주요국의 금리 인하 시기와 폭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중동 분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경계심을 갖고 긴밀히 공조해 대응하기로 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도 별도의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 FOMC 결과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상황과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유 총재는 “연준의 향후 통화정책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불확실성 요인이 상존하는 만큼 외환금융시장 상황을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점검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