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이 유료멤버십 가입비 인상으로 투자 재원을 수월하게 확보하게 되면서 앞으로 경쟁력 강화에 더욱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쿠팡이 유료멤버십인 와우멤버십 월 가입비를 인상하면서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업이라고 볼 수 없는 영역에서 한 해에만 1조3천억 원이 넘는 현금을 버는 기업은 유통업계에서 사실상 쿠팡이 유일하다는 점 때문이다.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른바 충성고객에게 매달 받는 돈을 투자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쿠팡의 ‘플라이휠’이 돌아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소비자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쿠팡의 유료멤버십 가격 인상 폭이 다소 과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이 적지 않다.
쿠팡은 최근 와우멤버십의 월 가입비를 기존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인상률로 따지면 58% 수준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탓에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든 점을 고려할 때 쿠팡의 가격 인상 폭이 크다고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실제로 “지나친 가격 인상이다” “총선 이후에 가격을 올리는 것은 비겁한 행위 아니냐” 등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일부 가입자들은 기존 가입자의 월 가입비가 인상되는 8월 이후 와우멤버십을 해지하겠다는 의견도 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시장에서는 쿠팡의 가격 인상 결정을 호재로 보고 있다.
▲ 사진은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 |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쿠팡Inc 주가는 최근 4거래일 동안 모두 19%가량 올랐다. 쿠팡이 유료멤버십 가격 인상을 발표한 12일 당일에만 11.5% 급등했다.
쿠팡Inc 주가는 미국 현지시각 17일 기준 22.7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2022년 2년 이후 2년2개월 만에 최고치다.
시장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쿠팡의 유료멤버십 가격 인상 효과가 즉각적이고 크기 때문이다. 2023년 말 기준 와우멤버십 가입자 수는 1400만 명이 넘는다. 기존 가입자의 탈퇴가 없다면 멤버십 구독료로만 연간 1조3255억 원을 받게 된다.
쿠팡이 2023년 낸 영업이익이 6200억 원 수준인데 이의 2배가 넘는 돈을 가만히 앉아서 벌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일부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지만 기존 가입 고객 가운데 약 38%가 탈퇴해야만 기존과 수익이 비슷한 셈이라 쿠팡으로서 손해 볼 가능성은 사실상 적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쿠팡의 유료멤버십 가격 인상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고정 수익이 쿠팡의 경쟁력 강화에 지속적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쿠팡의 본업은 이커머스 플랫폼 쿠팡을 비롯해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쿠팡플레이다. 이 영역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매일, 매주, 매달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매출이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미래 수입이 어떻게 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쿠팡이 이 사업들을 통해 버는 돈을 투자 재원으로 쓸 때 계획이 변동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료멤버십은 다르다. 고객 한 명에게 매달 꼬박꼬박 7890원을 받는 것은 예측가능한 수입이다. 가입자 수만 확인하면 매달 얼마가 들어올지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투자를 진행하기도 편리하다.
예컨대 투자 시나리오를 따져 보면 쿠팡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아진다.
이론적으로는 매달 1100억 원가량의 고정수입이 발생하는데 이렇게 되면 쿠팡 사업의 핵심인 풀필먼트센터를 3~4달 마다 하나씩 세울 수 있는 셈이 된다.
쿠팡의 경쟁자들로 꼽히는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우 본업에서 적자를 내거나 실적이 줄어들다보니 외부 자금을 차입해 물류센터를 겨우 하나씩 세우고 있다. 반면 쿠팡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전국 단위의 물류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배달 사업에서도 공격적 프로모션을 전개하기 유리해진다.
쿠팡이츠는 이미 배달업계 최초의 단건배달 서비스 제공, 메뉴 10% 상시 할인에 이어 최근에는 배달비 무료 정책까지 꺼냈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쿠팡이츠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갔을 정도로 쿠팡이츠의 정책은 공격적이었다.
쿠팡이츠는 이런 노력에 힘입어 배달 앱 시장에서 만년 3위였지만 최근에는 요기요를 제치고 업계 2위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쿠팡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쿠팡플레이는 넷플릭스나 티빙과 같은 다른 플랫폼과 달리 역시 오리지널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늘 받았다. 하지만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 초청,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단 초청 등 굵직한 이벤트를 연달아 열며 고객들의 주목을 받는데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쿠팡은 유료멤버십의 안정적 수입을 기반으로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 등에 보다 여유롭게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쿠팡플레이가 3월 진행한 미국 MLB 야구단 초청 행사 포스터. <쿠팡플레이> |
쿠팡은 지난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단 토트넘훗스퍼를 초청하는 데만 100억 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돈도 유료멤버십 수입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의 유료멤버십 가격 인상이 ‘똘똘한 정책’인 이유는 경쟁사들이 본업 악화에 따라 사업 효율화에 매진할 때 쿠팡은 오히려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며 “쿠팡은 앞으로 경쟁자들과 달리 오롯이 ‘경제적 해자’를 더 깊게 파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쿠팡 역시 투자 확대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쿠팡은 멤버십 가격 인상 당시 “무료 배송, 무료 반품, 무제한 OTT 시청, 무료 음식배달과 같은 와우회원을 위한 특별한 혜택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전국 무료 배송을 위한 물류 인프라 확장과 첨단 기술,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에 대한 투자도 지속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김범석 의장이 애초 쿠팡의 역할모델로 삼았던 아마존의 ‘플라이휠’ 전략에 더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지점으로 꼽힌다.
플라이휠 전략은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제시한 전략으로 사업 확장에 한 번 속도가 붙으면 관성으로 계속 사업이 커지는 효과를 말한다. 커다란 바퀴를 한 번 굴리는 데는 힘이 들지만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힘을 적게 들여도 훨씬 빠르고 쉽게 돈다는 원리에서 따왔다.
쉽게 말해 한 사업에서 돈을 벌면 해당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신사업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다시 고객 유입을 확대해 더 많은 돈을 버는 전략을 뜻한다.
김 의장은 쿠팡의 실적발표 때 자주 “더 많은 제품에서 고객 채택과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쿠팡의 플라이휠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플라이휠 전략을 강조해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