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도 ESG 관련 결의안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ESG의 성공정 정착을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항상 정치가 문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미국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지난 3월20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개 정치적 대립을 격화시키는 결과로 연결된다.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행사해야 하는 만큼 첫 번째 거부권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바로 그 정권의 정책방향과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첫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사안은 다름 아닌 ESG 관련 결의안이다.
미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 중인 ERISA(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의 ESG투자를 허용하는 노동부(DOL)규칙 개정을 막기 위해 결의안을 제출했다. 일부 민주당 상원의원의 이탈표로 결의안은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고,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신과 동물이 아닌, 모든 인간은 국가 안에 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정치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보다는, 문제를 심화시키거나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드는 모습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추첨을 통해 시민이 직접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의사를 보다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시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대리인을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로 발전해왔다.
시민은 투표를 통해 대리인을 선출하고, 선출된 대리인은 국가공동체 최고의 선(善)을 위한 정치 활동을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다. 하지만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인이 자신이 대변해야 할 시민의 선(善)이 아닌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특정 정치집단을 위한 결정을 하는 경우다. 어떤 사안을 의도적으로 정치 쟁점화시키거나 진영화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정치가 해결 수단이 아닌, 문제로 전락하는 것은 항상 이 지점이다.
최근 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반ESG(Anti-ESG)’ 또는 ‘반워크자본주의(Anti-Woke capitalism)’ 움직임도 그러한 경우다. 공화당은 기후변화, 성소수자 보호 등 ESG 이슈에 목소리를 내거나 ESG 투자 또는 경영에 적극적인 기업을 ‘깨어 있는 척하는(woke) 자본가’로 규정하고 매몰찬 비판을 가하고 있다.
ESG는 개인적 명성이나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 행위이며 ESG경영과 투자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단순한 비판 수준을 넘어 행동에 나서고 있다. 플로리다, 텍사스 등 공화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州)를 중심으로 화석연료 등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등 ESG에 적극적인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기금운용, 채권인수 및 구매계약 등에서 배제하는 보이콧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300개 이상의 반(反)ESG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며, 공화당 차기 유력 대권주자 디 샌티스(De Santis)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에서는 성소수자 교육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월트디즈니사에 대한 세금혜택과 특별행정지구 권한을 축소하기 위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ESG 붐을 주도한 세계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은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회 청문회에 수차례 불려 나가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공화당의 반ESG 캠페인 이후 공화당 지지자의 미국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2019년 대비 20% 이상 급감한 30%수준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의 이러한 주장과 행동을 사회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건전한 정치논쟁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진영을 결집시켜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ESG를 악용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까?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공화당의 반ESG정책은 당장에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로 연결될 전망이다. 텍사스를 비롯해 ESG 금융기관을 지방채 인수에서 제외한 미국 중남부 주(州)들은 채권금리 상승으로 인해, 2억6천만 달러에서 최대 7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연기금 투자에서 ESG를 배제한 인디애나 주와 캔사스 주는 향후 10년간 67억 달러와 36억 달러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ESG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기회상실이다. 백악관의 분석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은 대부분 공화당 지역, 이른바 레드 스테이트(Red States)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IRA로 인해 텍사스, 플로리다, 아이오와주에 예상되는 재생에너지 투자금은 각각 655억 달러, 627억 달러, 246억 달러인 반면,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s, 민주당 지지지역)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보인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의 예상투자금은 340억 달러, 212억 달러에 불과했다.
기후변화 관련 정책이 강화되고 기업의 활동이 늘어날수록 햇빛과 바람이 풍부한 중남부로 투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미국 중남부는 이미 기후변화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이상기후로 인해 큰 피해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될 경우 텍사스, 플로리다 등 미 중남부 지역은 해수면상승, 허리케인 심화, 고온현상 등으로 인해 2100년까지 연 평균 GDP의 10%에서 20%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 평균인 0.7%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공화당에서 반ESG운동을 이끌고 있는 디 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취임 후 첫 활동이 허리케인 피해 복구와 기후적응 정책 강화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공화당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활동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지역의 정치인이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적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을 막아서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로 범위를 넓혀봤을 때도 반ESG 정책은 경제적으로 전혀 좋을 것이 없는 선택지로 보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항상 여야 간의 극한 대립을 보이는 미국 정치에서도 서로 간의 마음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중국과의 패권경쟁이다.
현재 최고조에 달한 대중국 무역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8년 트럼프행정부 시기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상대국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환경, 인권, 안전, 기업 지배구조 수준이 낮은 중국기업을 견제하기에 ESG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명분을 제공한다.
중국은 미국의 2018년 관세인상을 WTO(세계무역기구)협정 위반으로 제소했는데 미국은 실제로 강제노동,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보호, 공중질서 위반 등의 사유로 차별조치를 인정하는 ‘GATT 20조 일반적 예외 조항’을 들어 관세 인상의 타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대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미국이 추진한 신장 위구르 지역 수입금지 조치도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며 동일하게 GATT 20조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하원의회의 영문명은 ‘House of Representatives’이다. 유권자들의 대변자들이 모인 곳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화당의 반ESG는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 공화당 텃밭인 미국 중남부 지역의 시민인가?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앞서기를 원하는 미국 국민 전반인가? 그 무엇도 아니면, 정치인 개인 또는 특정 계파의 선거 승리를 위해 지지층 결집용인가?
지난 20세기 우리는 환경과 노동자를 착취하여서라도 부를 쌓고자 하는 자본가들과 그에 맞서는 노동자와 시민의 투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자본과 일반 시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기회를 맞았다. 환경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앞장서서 나서는 기업과 금융을 막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일이다.
역시 ESG에도 정치가 문제다. 그렇다고 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길이 아니다. ESG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절실하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ESG를 외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은 여전히 그들의 말에 진정성이 있는 지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제도로는 누가 제대로 ESG 경영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ESG붐에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탐하고 있는 지를 가려내지 못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참여자의 이익추구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제도가 필요하다.
ESG도 마찬가지다. 이원욱 의원이 제안한 ‘ESG자본주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게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사회에도 기후변화, 양극화, 노동자 권리, 양성평등과 다양성 등 ESG라는 수단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한 소모적 논쟁이 아닌 최고의 선을 찾아 가는 발전적 정치 논의를 기대해 본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2011년부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재직 중이다. 국민연금법, 자본시장법, 전기사업법 등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및 기후변화 대응 정착을 위한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정보공개 플랫폼인 CDP와 RE100, SBTi, PCAF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한국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100대 기업 ESG 담당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을 공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