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미국 따라 전기차 보호무역 도입할까, 현대차 기아 ‘이중고’ 우려

▲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유럽 국가 및 자동차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해 보호무역조치를 도입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대차 기아가 상황에 따라 이중고를 겪게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 차별과 관련해 이와 유사한 보호무역 조치를 도입하며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국과 미국에 이어 유럽도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더 큰 어려움에 놓일 수 있다.

10일 미국 CNBC에 따르면 유럽연합에 소속된 27개 국가의 당국 관계자들은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 방안과 관련해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미국의 전기차 지원금 차별 지급 정책에 심각한 우려를 느끼고 있다며 유럽 경제와 기업들이 피해를 받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유럽연합 당국 관계자는 CNBC를 통해 “여러 국가의 경제부 장관들은 최적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유럽연합 차원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북미 이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에서 대부분의 전기차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유럽 국가 소속 자동차기업은 물론 한국에 대부분의 공장을 보유한 현대차와 기아도 이런 조치에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와 주요 자동차 및 배터리기업은 미국 정부를 향해 새 보조금 정책 시행 계획을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긍정적 답변을 받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유럽연합이 나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는다면 현대차와 기아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유럽 국가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볼 때 유럽연합의 대응 방향이 오히려 한국에 더욱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럽연합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비슷한 보호무역 조치를 도입해 맞대응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노 르메어 프랑스 경제부장관은 CNBC를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도입은 유럽연합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며 “유럽도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현지언론과 인터뷰에서 유럽이 미국과 같이 유럽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중국과 미국이 모두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둔 반면 유럽 국가들만 이런 조치를 내놓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해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한 목적은 미국 자동차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새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따라 당장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업체는 대부분 테슬라와 포드, GM 등 미국 자동차기업에 그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친환경차산업 육성 초기부터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는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운영해 자국 자동차 및 배터리기업을 육성해 왔다.

유럽연합이 독일과 프랑스 등 소속 국가의 자동차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나 중국과 비슷한 조치를 도입하는 일도 표면적으로 보면 당연한 수순에 해당할 수 있다.

만약 유럽에서 실제로 이런 조치가 시행되면 현대차와 기아는 주요 수출 지역인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이중고를 겪게 될 공산이 크다.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는 미국시장과 유럽시장에서 모두 호평을 받으면서 꾸준한 판매량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품질과 성능, 가격 측면의 장점을 모두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어려워져 가격 경쟁력을 놓친 것과 같이 유럽에서도 보조금 차별이나 수입관세, 수출 제한 등에 직면한다면 큰 어려움을 피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가 모두 갈수록 불리한 상황에 놓이고 있는 셈이다.

보호무역주의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배터리에 사용되는 소재 가운데 중국산 수입품 비중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전기차를 2024년부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유럽연합도 전기차 배터리를 대상으로 이와 비슷한 규제를 도입한다면 미국과 유럽 고객사를 주요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국 배터리업체가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다만 유럽연합 당국 관계자는 CNBC를 통해 “현재로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과 관련해 미국 정부와 활발한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