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SK실트론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최초로 8인치(200mm) 크기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의 양산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는 높은 내전압성(전압을 견디는 성질)과 내열성(열을 견디는 성질) 덕분에 차세대 반도체용 웨이퍼로 주목받는다.
특히 내전압성과 내열성이 크게 요구되는 차량용 전력관리반도체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차량용 전력관리반도체는 자동차의 전장화가 가속화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안전성과 관련한 완성차회사들의 눈높이도 높아져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첨단소재부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2025년까지 5조1천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최근 내놨다. 여기에는 SK실트론이 실리콘카바이드 반도체사업에 7천억 원을 투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장용호 사장은 올해 7월 SK실트론의 미국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법인인 SK실트론CSS가 3천억 원을 들여 미시간주에 위치한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생산설비를 증설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최근의 투자계획은 7월 발표한 투자의 연장선에 있다.
투자규모가 불어나면서 SK실트론의 상장 가능성에도 다시 시선이 쏠린다.
SK실트론은 LNG회사 SKE&S와 함께 SK그룹의 ‘대어급 상장후보기업’으로 꼽혀왔다. 자연히 상장을 향한 기대도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SK실트론 관계자는 “현재 상장과 관련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SK그룹이 지난해 SK바이오팜에 이어 올해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리츠 등을 잇따라 시장에 공개하고 있는 만큼 투자업계에서는 SK실트론의 상장도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SK실트론 기업가치는 4조~5조 원 수준으로 매겨지고 있다.
장 사장으로서는 SK실트론의 상장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SK실트론의 재무구조를 들여다보면 5년 동안 연 1400억 원가량의 투자를 자체적 자금으로만 추진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2분기 말 연결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등을 더한 SK실트론의 현금 동원능력은 3500억 원가량이다.
최근 3년(2018~2020년) 동안 연평균 3400억 원 수준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했지만 해마다 4천억 원가량의 운영자금을 사용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업현금흐름을 투자로 돌릴 여력은 크지 않다.
2분기 말 기준 연결기준 SK실트론 부채비율은 190.5%로 양호하다고 볼 수는 없는 수준이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자금조달에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상장은 장 사장이 SK실트론의 신사업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인 셈이다.
SK실트론의 상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기업의 ‘파이낸셜 스토리’와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2020 CEO 세미나’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성과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기업가치 평가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이제는 매력적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이 담긴 파이낸셜 스토리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시대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말한 파이낸셜 스토리는 고객과 투자자, 시장 등을 대상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 기업가치를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경영전략이다.
장 사장은 SK그룹 지주사 SK의 투자2센터(당시 PM2부문)장 출신으로 파이낸셜 스토리를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SK머티리얼즈가 좋은 사례로 꼽힌다.
2018년에는 대표이사에 올라 SK머티리얼즈가 다양한 소재분야 신사업 투자를 통해 성장하는 전략을 확립했는데 그의 후임자인 이용욱 SK머티리얼즈 대표이사 사장도 이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장 사장은 2020년 1월 SK실트론 대표이사에 오른 뒤 곧바로 미국 듀폰의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사업부(현 SK실트론CSS)를 4억5천만 달러(5천억 원가량)에 인수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SK실트론에서도 투자를 통한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SK실트론의 상장은 그가 신사업의 포석을 놓은 데 이어 성장을 본격화하는 단계까지 추진하면서 또 한 번 성공적으로 파이낸셜 스토리를 쓰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장 사장은 올해 내놓은 SK실트론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친환경 고효율의 신소재 웨이퍼를 개발해 미래 첨단산업에 적용하겠다”며 “웨이퍼산업의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성장함은 물론이고 고객, 사회,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