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이 물러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용퇴를 결정하고도 후임자와 함께 일하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LCD사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가 막중함은 물론 동시에 LG디스플레이에서 한 부회장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던지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17일 LG디스플레이에 따르면 한 부회장은 2020년 3월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 대표이사 지위를 유지한다. 이미 집행임원으로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긴 정 사장과 6개월 동안의 동거를 하게 된 셈이다.
대표이사 교체를 결정하고도 인사를 6개월 늦춘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 중에서 한 부회장이 LG디스플레이 실적 부진의 원인이 된 LCD사업 구조조정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LG디스플레이는 LCD 생산라인을 대폭 축소하고 올레드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3조원을 투자해 파주 P10 공장 내 10.5 세대 올레드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파주 공장과 함께 대형 올레드 생산의 양대 기지 역할을 할 광저우 8.5세대 공장은 8월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올레드로 체질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디스플레이 전문가인 한 부회장의 경험과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3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LCD 생산라인 감축과 함께 인력 감축을 통해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 부회장은 남은 기간 정 사장과 함께 LG디스플레이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데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LG디스플레이는 사업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2019년에 대규모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조조정이 실적 반등의 계기가 돼 2020년에는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의 연간 실적에 끝까지 책임을 지면서 후임인 정호영 사장에 실적 부담을 떠넘기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한 부회장이 내년 주총까지 LG디스플레이를 이끌도록 한 것을 두고 LG디스플레이를 오랜 기간 이끌며 1위의 자리에 올려놓은 한 부회장의 공로를 예우하고 박수받으며 떠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많다.
LG디스플레이는 한 부회장의 용퇴를 발표하면서 최근의 실적 부진보다 23분기 연속 흑자, 8년 연속 대형 LCD패널 점유율 1위 등 그동안의 성과를 앞세웠다.
LG디스플레이는 “한 부회장이 그동안 LG디스플레이 발전에 기여한 성과가 크다”며 “LCD 중심의 사업구조를 올레드로 전환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대형 올레드시장을 개척해 TV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전현직 CEO의 6개월 동거를 놓고 인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그룹 차원의 판단이 뒤따랐다는 시각도 있다. LG그룹의 조직문화와 인사기조는 ‘인화’에서 최근 들어 ‘성과주의’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과도기에서 충격을 줄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한 부회장의 ‘덕장’ 스타일 리더십 역시 LG디스플레이가 최고경영자(CEO) 교체기간을 넉넉히 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부회장은 소통에 능하고 친화력이 강해 그룹 내부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신뢰가 높은 리더를 한순간에 갈아치우는 일은 조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LG그룹이 한 부회장의 전격 교체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재계에서는 바라본다.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조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라는 점도 고려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 부회장은 대표이사에 오른 뒤 대리급 이하 직원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직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어울리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수험생을 둔 임직원이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임직원에게 선물을 보내는 등 세심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