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김세권, 파인텍 대표 직접 맡아 노사갈등 겨우 봉합

▲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오른쪽)가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과 11일 서울 양천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합의서를 작성한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가 파인텍 노조의 굴뚝농성을 426일 만에 끝내도록 했다.

김 대표는 이전에도 노조의 굴뚝농성을 한 차례 경험했는데 같은 투쟁의 반복을 막지 못했다. 

이번에는 김 대표가 직접 파인텍 경영을 맡게 됐는데 그의 의지에 따라 노사갈등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파인텍 노사가 11일 이룬 합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가 파인텍 대표를 맡기로 했다는 점이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은 합의를 마친 뒤 “김 대표의 책임을 가장 신경썼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파인텍 노사합의를 환영하는 성명에서 “김세권 대표가 얼마나 진실하게 합의를 이행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바라봤다.

이전까지 다섯 차례 교섭에서 노조는 김 대표가 강민표 스타플렉스 전무를 파인텍 대표로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김 대표가 직접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 왔다.

반면 파인텍 쪽은 스타플렉스와 파인텍이 법적으로 분리돼 있어 김 대표가 파인텍을 책임질 이유가 없다며 명확히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여섯 번째 교섭에서 회사쪽이 태도를 바꾸면서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노사는 합의문의 첫 번째 조항에서 회사의 정상적 운영 및 책임경영을 위해 김 대표가 파인텍 대표이사를 맡는다고 못을 박았다.

김 대표는 2010년 자회사 SIL을 설립해 파인텍의 모체 격인 한국합섬 자회사 HK공장을 인수했다. SIL은 스타케미칼로 이름을 바꿨다가 청산 등을 거쳐 파인텍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두 차례 노조와 합의를 했으나 두 번 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HK를 인수할 때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하지만 스타케미칼이 2년 연속 적자를 내자 회사를 청산하고 권고사직을 진행했다.

이 때 권고사직을 거부한 28명이 해고당하고 노조 측이 408일의 굴뚝 고공농성을 하게 됐다. 그러자 김 대표는 2015년 신설법인을 만들어 고용을 보장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통해 고공농성을 끝냈다.

그러나 이 합의 역시 파국으로 끝났다. 약속했던 시일 안에 단체협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노조는 2016년 10월 파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파인텍은 공장 가동을 멈추고 2017년 8월 공장에서 기계를 철수했다. 이에 2017년 11월 다시 굴뚝 고공농성이 시작됐다.

김 대표가 이전과 태도를 바꿔 파인텍 대표를 맡게 된 데에는 정치·종교계의 중재 노력과 함께 최근 여러 장기적 노사갈등이 봉합돼 가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만 KTX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갔고 10년 가까이 지속돼 온 삼성반도체 직업병 논란도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합의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최고위원과 박홍근 을지로위원장 등은 파인텍 노사 중재에 나섰고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도 협상 과정에 참여했다. 박승렬 목사, 나승구 신부 등 종교인들도 힘을 보탰다.

김세권 대표는 파인텍 합의가 이뤄진 후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많은 관심 보여줘 감사하며 합의는 원만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인텍의 모든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합의문에서 노사는 기본협약의 내용을 명시했으나 2019년 4월30일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로 해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

김 대표가 직접 파인텍 경영을 책임지는 상황에서 이전보다 어깨가 더욱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1954년 생으로 삼천포고등학교를 나와 1985년 광고용 소재회사인 강우상사를 설립했다. 광고용 사인소재인 플렉스 원단을 생산해 1995년부터 스타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했고 2006년에 회사이름도 스타플렉스로 바꿨다.

스타플렉스는 수출기업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2002년 중소기업청 수출유망기업에 선정됐고 2003년에 벨기에 법인과 2009년 중국 법인을 설립했다. 

2003년 무역의날 1천만불 수출탑 수상을 시작으로 2004년 2천만불, 2005년 3천만불, 2009년 5천만불, 2012년 7천만불 수출탑을 차례로 수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