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정에 각종 전시행정으로 재정부실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경기도 예산의 10%에 이르는 1조5천억 원의 재정결함이 발생해 IMF 이후 첫 감액추경을 편성했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도지사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김문수는 이 두가지를 모두 인정했다.
두 번의 도지사를 역임하는 동안 경기도 재정자립도는 2006년 68.8%에서 2013년 60.1%로 떨어졌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와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도 재정건전성을 두고 김문수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학창시절에 ‘진보의 화신’이었는데 ‘보수의 화신’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문수는 2013년 국감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자 “지금은 보수라는 새누리당의 입장”이라며 “대한민국도 세계도 대학다닐 때와 많이 바뀌었다”고 대답했다.
노동운동으로 시작해서 정치와 행정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고 개인 비리 등 잡음이 없는 편으로 여당이 위기에 몰렸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조커와 같은 카드라는 평가가 있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하는 등 대권 의지가 강하다. 2013년 한때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선주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에 인물을 결집하지 못해 대권으로 향하기에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여성에 대해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2010년 10월 8일 “청바지 한 장, 예쁜 아가씨 하룻밤”, 11월 2일 “소녀시대, 쭉쭉빵빵”, 2011년 22일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으려고”, 2014년 12월 29일 “여성들이 대체로 활동 폭이 남자보다 좁다”며 여성 비하발언을 지속적으로 해 비판을 받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6년 신한국당 대표최고위원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1998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를 맡았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0년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 등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근로기준법에 포함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 재개정에 찬성했다.
김문수는 노동부가 이들의 노동 실태파악에 나서야 한다며 별도 예산편성을 요구했다.
2001년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2002년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을 역임하고 2003년과 2004년 한나라당 대외인사영입위원장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시 최병렬 대표가 박근혜 공천심사위원장을 내세웠으나 이에 반대했고 결국 김문수 본인이 공천심사위원장이 됐다. 이때 전두환 정권에서 안기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노태우 정부에서 총무처 장관을 역임한 김용갑을 후보로 공천해 개혁 공천이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59.6%의 득표율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도 52.2%의 득표율로 경기도지사에 재선돼 최초로 경기도지사를 연임했다.
그러나 2014년 “8년이면 많이 했다”며 3선 도전을 포기하고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감했다. 새누리당에서 재보궐선거 출마 요구도 많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이후 고향인 대구에서 택시기사 체험, 소록도와 꽃동네 봉사 등 활동을 이어가다가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여의도 정계에 복귀했다.
◆ 학력
1964년 영천초등학교, 1967년 경북중학교, 1970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당했고 25년만인 1994년 서울대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던 1981년 9월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던 설란영씨와 결혼했다.
외동딸 김동주씨는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1년 결혼한 김동주씨의 남편 역시 동문이고 사회복지사다. 2012년 외손자가 태어났다.
◆ 상훈
◆ 상훈
어록
“국민에게 큰 불편을 끼치며 촛불집회에 나섰던 이들은 사과해야 한다. 데모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사사건건 반대하면 안 된다.” (2010/05/30, 경기도지사 후보와 성균관대총학생회장단 간담회에서)
“심심하면 포격도발을 해오겠다고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까불면 죽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2011/03/08, 파주 임진각에서 군 대응태세를 점검하며)
“김문수는 자금, 인력, 조직이 없습니다. 대세론도 없습니다.. 저는 정치적 기교를 모릅니다. 김문수는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뜨거운 가슴과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려는 맑은 신념만을 가지고 나섰습니다.” (2012/04/22,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히며)
“우리나라의 국사는 잘못됐고, 우리나라와 북한의 국사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공무원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한 만큼 이를 위해 교육용 국사교과서 출간을 추진할 계획이다.” (2012/06/04, 경기북부청사 월례조회에서 공무원용 국사교과서를 출간하겠다며)
“역사적 사실이니까 5.16 자체가 군사쿠데타냐 군사혁명이냐 크게 논란이 될 게 있겠느냐. 쿠데타나 혁명이나 둘 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당시 박정희 장군을 비롯한 본인들이 권력을 빼앗은 역사적 사건이다.” (2012/07/13, 라디오에서 5.16을 평가하며)
“연쇄 살인범이나 성폭행범 등 반인륜적인 범죄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가 이미 60명인데 대통령부터 사형집행을 안 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사형집행을 미루는 게 누굴 위한 인권이냐. 형집행 효과가 있느냐며 자꾸 해괴한 궤변으로 말장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살기 때문에 도저히 같이 살기에 극복 안 되는 소수의 병적 상태, 특이상태인 자들에 대해서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2012/09/04, 경기도청 월례회의에서 반인륜적 흉악범죄에 우려를 나타내며)
“박 당선인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이래 1125년만에 최고 여성 권력자다. 여성대통령은 주변 4개 최강국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역사적 여성대통령으로서, 세계가 주목하는 여성대통령으로서 모든 분께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되길 바라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업적을 남겨주길 바란다.” (2012/12/26, 인터뷰)
“결식아동과 저소득층 아이들의 급식은 계속될 것이지만 빚을 내면서까지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할 수는 없다. 부모님들의 깊은 이해와 적극적 협조를 당부 드린다” (2013/08/16, 무상급식 지원중단을 선언하며)
“지난 한 해가 매우 중요했는데 임기 초반 대통령이 내내 답답했다. 경제민주화 이름 하에 귀중한 취임 초기 1년을 허송세월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세무조사가 계속됐고 과도한 복지적 요구 등으로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지난해 2.8% 성장했다는데 사실 기업이 투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2014/01/24, 경기도내 기관장 모임 월례회에서)
“박 대통령보다 먼저인 1994년 입당했고 한 번도 탈당을 하거나 해당행위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제일 고참인데 나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들은 건망증에 걸린 것 같다.” (2014/01/28, 기자간담회)
“대한민국 정치를 쇄신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만일 대통령이 되면 과감하게 지방에 책임과 권한을 넘겨주겠다. 지방자치 없는 국민행복은 없으며, 대통령의 행복도 없다” (2014/03/26, 경기도지사 3선 도전 포기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 국민은 자신들이 직접 뽑고 싶어 한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나 같은 것으로, 대통령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욕을 먹는 현실에서 의원들이 뽑는 총리나 장관을 국민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2014/10/22, 동국포럼2014 강연에서 개헌에 반대하며)
“우리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나라를 지킨 이승만 대통령 동상 하나 세워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주신 박정희 대통령 동상도 광화문에 세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를 가장 위대하게 만든 사람을 욕하는 이런 역사 가지고 선진국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4/11/25, 새누리당원 대상 강연)
◆ 평가
경기도정에 각종 전시행정으로 재정부실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경기도 예산의 10%에 이르는 1조5천억 원의 재정결함이 발생해 IMF 이후 첫 감액추경을 편성했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도지사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김문수는 이 두가지를 모두 인정했다.
두 번의 도지사를 역임하는 동안 경기도 재정자립도는 2006년 68.8%에서 2013년 60.1%로 떨어졌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와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도 재정건전성을 두고 김문수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학창시절에 ‘진보의 화신’이었는데 ‘보수의 화신’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문수는 2013년 국감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자 “지금은 보수라는 새누리당의 입장”이라며 “대한민국도 세계도 대학다닐 때와 많이 바뀌었다”고 대답했다.
노동운동으로 시작해서 정치와 행정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고 개인 비리 등 잡음이 없는 편으로 여당이 위기에 몰렸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조커와 같은 카드라는 평가가 있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하는 등 대권 의지가 강하다. 2013년 한때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선주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에 인물을 결집하지 못해 대권으로 향하기에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여성에 대해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2010년 10월 8일 “청바지 한 장, 예쁜 아가씨 하룻밤”, 11월 2일 “소녀시대, 쭉쭉빵빵”, 2011년 22일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으려고”, 2014년 12월 29일 “여성들이 대체로 활동 폭이 남자보다 좁다”며 여성 비하발언을 지속적으로 해 비판을 받았다.
◆ 기타
2010년 경기도지사 재선 취임식과 2014년 퇴임식을 의정부시 가능역 한솥나눔 119무료급식센터에서 무료 급식봉사로 갈음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 80년대 노동운동을 함께 했다. 김문수는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이었고 심상정은 중앙위원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김문수는 성장 중심, 심상정은 분배 중심으로 노선을 달리했다.
1986~1988년 감옥에 있으면서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고 사상의 변화를 겪었다. 혁명을 하려고 했지만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1995,백산서당), <나의 길 나의 꿈>(2006,미지애드컴), <김문수는 말한다 1~3>(2012,연장통) 등 9권의 책을 출간했다.
2011년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정치인 가운데 처음으로 스마트폰용 인물앱 ‘김문수 style'을 출시했다.
2015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수웹툰’이라는 이름의 웹툰을 공개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웹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