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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핏값으로 출발한 포스코의 회장 선임 논란이 답답하다

이지혜 기자 wisdom@businesspost.co.kr 2018-06-22 17: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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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자.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사무실에서 똑바로 걸어 우향우 한 뒤 영일만 앞바다에 몸을 던져야 한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포스코 전신인 포항종합제철을 세우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포항종합제철이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대일청구권자금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의 죗값으로 받은 배상금이다.
 
조상의 핏값으로 출발한 포스코의 회장 선임 논란이 답답하다
▲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그렇게 태어난 포스코는 국내 철강회사 1위이자 전세계 5위 철강회사로 성장하며 '국민기업', '국민의 자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물론 포스코는 민영화한지 18년이 지난 민간기업이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지분이 12%에도 못 친다. 외국인 주주도 과반이 넘는다. 

하지만 포스코는 탄생 배경을 놓고 보면 그 어느 기업보다 공적책무를 강도 높게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을 놓고 보면 포스코의 눈높이가 국민기업 포스코를 바라보는 외부의 눈높이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올해 4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을 회장 후보 선임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가 뒤늦게 누가 회장 후보에 올랐는지 공개됐다.

포스코는 2013년 회장 선임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CEO승계카운슬을 도입했다. 포스코가 자랑하는 CEO승계카운슬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의 방식을 벤치마킹해 만든 기구인데 2014년 1월 처음으로 권오준 후보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때도 논란이 됐다. CEO승계카운슬은 들러리였고 청와대가 실질적으로 권 회장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당시 CEO승계카운슬은 2014년 1월 회장 후보로 낙점한 인물 5명과 선정기준까지 모두 공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조차 공개하지 않아 '밀실논의' '짬짜미 선출'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뒤늦게 후보를 공개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이런 태도 변화만으로는 논란이 진화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논란의 핵심은 권오준 회장이 석연치 않게 물러나기로 한 마당에 다음 회장을 뽑는 모든 힘이 권오준 회장이 구성한 사외이사에게 모두 몰려있다는 점이다.
 
조상의 핏값으로 출발한 포스코의 회장 선임 논란이 답답하다
▲ 권오준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이 2016년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권오준 회장이 공도 있고 과도 있지만 적폐라는 시각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후임 회장을 뽑는 절차가 전적으로 권오준 회장체제에서 이뤄진다는 사실 자체를 놓고 거부감도 상당한 것이 현실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정부의 포스코 민영화는 회장 선출권을 국민에게 되돌린 것이지 내부 소수에게 백지위임한 게 아니다”라며 “지난 10년 동안 포스코를 커덜 낸 적폐세력이 또다시 포스코를 움켜쥐려고 한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포항종합제철의 모든 성공 여부는 지금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직접적 사명이다. 우리 자신의 잘못은 영원히 기록되고 추호도 용납될 수 없으며 가차 없는 문책을 받아야 한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30여 명의 손님을 모아놓고 포항종합제철 창립사를 발표했다. 창립식 규모는 조촐했지만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는 조상의 핏값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포스코가 이제는 국민기업이라는 운명에 걸맞게 회장 선임절차를 다시 손볼 때도 됐다. 국민기업이라면 그에 걸맞게 응답할 수 있는 용기도 보여줘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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