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을 앞세워 순항 중이던 김진석 CJ헬로비전 사장이 이동통신사라는 암초를 만났다. CJ헬로비전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정지 기간에 반사익을 보자 SK텔레콤이 견제에 나섰다. KT도 알뜰폰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어 김 사장의 향후 행보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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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CJ헬로비전 사장 |
KT와 LG유플러스 영업정지가 시작된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번호이동 시장에서 알뜰폰 사업자는 가입자 순수 증가 1만4068건을 기록했다. 물론 전체 번호이동 가입자 수는 이통 3사 중 유일하게 영업 중인 SK텔레콤이 순증 1만5650건으로 더 높았다. 그러나 이는 평소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KT와 LG유플러스가 영업정지를 당해 번호이동이 금지되면서 SK텔레콤보다 알뜰폰 사업자가 더 큰 이득을 보고 있다.
알뜰폰 시장의 일인자인 CJ헬로비전은 이번 영업정지의 최대 수혜자다. 영업정지 기간에 총 4880건의 가입자 순증을 기록했다. KT 망을 사용하는 알뜰폰 사업자가 올린 전체 실적 중 70%다. SK텔레콤의 자회사로 SK텔레콤 망을 이용하는 알뜰폰 사업자 SK텔링크가 같은 기간에 올린 가입자 순증 3837건보다도 79%가량 많다.
그러자 SK텔레콤이 곧바로 CJ헬로비전 견제에 들어갔다. 19일 오전 SK텔레콤은 이통사 영업정지를 이용해 CJ헬로비전이 최대 84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에 요금 정책 표 등의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방통위는 이를 받아들여 CJ헬로비전 담당 임원에게 경고조치를 취했다. CJ헬로비전의 보조금 정책도 같은날 전면 철회됐다. 이통사 간 불법 보조금 제보는 흔한 일이지만 알뜰폰 사업자를 제보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사장이 이통사와 경쟁에서 겪은 고충은 이번만이 아니다. 김 사장은 지난달 3일 기자간담회에서 “알뜰폰 시장에 이상한 형태의 대기업 제약이 걸렸다”며 규제가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김 사장은 알뜰폰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해 중소기업이 피해를 당한다는 여론을 반박했다. 이어 “알뜰폰 도입 취지는 어디까지나 통신비 경감”이라며 “중소기업만 보호되고 대기업은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알뜰폰 시장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는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통사도 강하게 비판했다. “정작 규제가 필요한 곳은 SK텔레콤 유통망을 이용해 영업 중인 SK텔링크와 오랫동안 시장 진출을 저울질하는 KT다”라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김 사장의 비판은 기존 통신사의 망을 임대해 낮은 가격에 이동통신 서비스를 판매하는 알뜰폰 사업의 구조 때문이다. 특성상 이통사의 자회사가 직접 영업에 나서면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선다. CJ헬로비전의 입지는 자동으로 줄어든다.
SK텔링크는 2012년 12월31일부터 지난해 6일까지 실시됐던 SK텔레콤 영업정지 기간에 본사의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우회 영업을 했다는 의혹으로 방통위의 조사를 받았다. CJ가 망을 빌려쓰고 있는 KT도 김 사장의 경계 대상이다. 업계는 KT가 자회사 ktis와 ktcs를 통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김 사장은 “만약 KT가 자회사를 통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한다면 이는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견제했다.
김 사장이 이통사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 알뜰폰 시장이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한해만 400억 원의 손실을 봤다”며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현재 60만 명 수준인 가입자를 120만~150만 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매출의 40% 수준을 망 대여료로 이통사에 내야 하는 것도 김 사장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그는 “미국 알뜰폰 사업자의 망 대여료는 매출의 25~30% 규모”라며 국내 망 대여료도 그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통사의 알뜰폰 시장 ‘곁눈질’은 계속될 전망이다. 알뜰폰이 향후 휴대폰 시장에서 그나마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알뜰폰 가입자는 248만1631명으로 국내 이동통신 전체 가입자 5400만 명 중 4.6% 수준이다. 전년도 126만여 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사업 분야도 이러한 증가세에 힘입어 전년 대비 2배 수준인 273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CJ헬로비전이 지난해 연간 매출액 1조 원을 넘기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통사 가운데 알뜰폰 시장에 선수를 친 곳은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은 2012년 6월 SK텔링크를 통해 알뜰폰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말엔 SK텔레콤 임원 출신인 서성원 사장을 임명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현재 SK텔링크는 37만2천여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알뜰폰 시장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도 알뜰폰 사업 진출을 놓고 정부와 협의 중이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 특히 KT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KT는 지난달 17일 윤경림 전무를 미래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미래융합전략실장으로 임명했다. 윤 실장은 얼마 전까지 CJ헬로비전에서 부사장으로 경영지원총괄을 담당했다. 신성장 동력 확보가 주요 업무인 미래융합전략실에 CJ헬로비전 출신 인사를 들여온 것은 KT가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려고 준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