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실적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메모리반도체사업에서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로 불안한 상황을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리라며 압박하자 중국이 적극 화답해 한국 반도체 수입물량을 줄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
미국 CNBC는 27일 "중국이 한국과 대만에서 수입하던 반도체 물량을 줄여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적극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며 "미국과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과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며 중국산 제품에 모두 600억 달러에 이르는 관세를 책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철강 등 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매겼다.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에 미국산 자동차 수입 관세를 인하하는 한편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리라는 직접적 요구도 내놓았다.
중국은 최대 수출국가인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 조건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BC는 "중국은 반도체 최대 수입 국가인데 미국산 반도체 비중은 지난해 1% 정도에 그쳤다"며 "한국과 대만기업들의 반도체 수출량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줄어들 지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반도체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견제하던 상황에서 좋은 핑계마저 확보한 셈이 됐다.
중국 정부는 최근 현지 스마트폰과 PC 제조사들의 부품 원가 인하 요구를 받아들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독점행위 관련 조사를 벌이는 등 압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마이크론과 인텔 등 현지 기업들을 통해 D램과 낸드플래시, 통신반도체 등 주요 제품의 충분한 공급능력을 확보하고 있어 이번 기회를 틈타 중국에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애플 등 글로벌 주요 전자업체의 공장이 대부분 중국에 위치한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칫 고객사에 메모리반도체 공급물량을 대거 잃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마이크론의 공격적 생산 증설로 올해부터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이 벌어질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어 한국 반도체기업에 불리한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
전자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중국 상황에서 보면 기존 반도체 구매 물량을 미국업체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도 크게 손해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공급 협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을 놓고 증권사들의 분석은 엇갈리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늘리면 국내 반도체기업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다"며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실제로 수입비중을 낮추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 연구원은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구매가 한국업체들의 주력상품인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와 반도체 위탁생산분야에 집중돼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중국에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에 경계심을 놓을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을 도구로 활용해 미국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기업의 한 관계자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중국 당국과 반도체 공급을 놓고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며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