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사진)이 회장에 승진하며 삼양식품 글로벌 전략에 힘을 싣는다. <삼양식품>
김정수 회장의 승진은 보수적인 조직 문화로 유명한 식품업계를 떠나 며느리에게 경영을 좀처럼 맡기지 않는 재벌가의 풍토와 상반되는 행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직접 영업을 뛰며 ‘불닭’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든 철저한 ‘성과주의’가 김 회장의 승진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삼양식품은 김 회장의 승진을 계기로 앞으로 글로벌 영토 확장을 위한 책임경영 체제에 더욱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발표된 김정수 회장의 승진은 삼양식품의 글로벌 전략이 ‘양적 성장’에서 ‘지역별 질적 공략’으로 진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양식품은 앞으로 세계 각 나라에 지역별 연락사무소를 추가 설립해 지역 및 국가별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김 회장의 승진은 해외 시장 개척을 진두지휘해 온 수장에게 명확한 전권을 실어 글로벌 공급망 확충과 현지 공략의 의사결정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삼양식품의 글로벌 영토 확장은 이미 수치로 증명됐다.
삼양식품은 현재 전체 매출 가운데 해외에서만 80%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10년 전인 2016년만 하더라도 해외 매출 비중이 10%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비중만 커진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규모도 급증했다.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2016년 930억 원이었지만 2025년 1조8838억 원까지 올랐다. 9년 만에 약 20배 확대된 것인데 이런 성장세는 비단 라면업계뿐 아니라 식음료 업계를 통틀어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김 회장은 이런 성장을 이끄는 데 사실상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사실 2016년 불닭볶음면이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해외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은 철저하게 운이 작용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 이후 삼양식품의 해외 사업 확대에는 김 회장의 실력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삼양식품의 수출 기반이 전혀 없던 시절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체질 변경을 한 게 김정수 부회장”이라며 “수출 성장세가 본격화된 이후 일년에 평균 4~5개월 출장 일정을 소화하며 직접 해외 영업을 했다”고 말했다.
과거 삼양식품 경영에 참여하면서 영업본부장을 맡았던 경력이 불닭볶음면을 중심으로 한 해외영업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불닭 브랜드의 성장에 따른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생산시설을 확충해 실적도 끌어올렸다.
삼양식품은 2022년 5월 완공한 경남 밀양 제1공장과 2025년 6월 완공한 밀양 제2공장에 이어 현재 중국 자싱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꾸준한 글로벌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능력도 올린 것인데 이는 삼양식품이 최근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계속 경신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양식품은 연이은 증설에도 여전히 공급 증가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고 있다”며 “글로벌 메가 브랜드를 바탕으로 지역 확장과 공급능력 확장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삼양식품 경영에 발을 들인 것은 사실 우연찮은 계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본래 삼양식품 오너2세인 전인장 전 회장의 아내로서 주부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98년 2월 삼양식품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부도 위기에 몰리자 삼양식품에 입사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업본부장을 거쳐 2009년 삼양식품 수석부사장, 2010년 삼양식품 사장, 2017년 삼양식품 총괄사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대외적으로 더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였다. 남편인 전인장 전 회장이 2020년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이를 수습할 인물로 김 회장이 떠오른 것이다. 김 회장은 2021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양식품의 방향성을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 삼양식품은 '불닭' 브랜드를 필두로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제품 이미지. <삼양식품>
김 부회장이 전권을 쥐면서 삼양식품의 성장은 더욱 속도가 붙었다.
임직원 규모를 보면 2021년 1826명에서 2025년 3025명 규모로 커졌다. 임직원 처우도 좋아졌다. 같은 기간 평균 연봉은 4290만 원에서 5630만 원으로 상승했다.
삼양식품이 올해 1월 서울 중구 명동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한 것도 이런 이유다. 삼양식품이 명동 시대를 연 것은 1997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사옥을 준공하며 하월곡 시대를 연 이후 약 28년 만이었다.
김 회장은 삼양식품의 명동 시대를 맞아 글로벌 마케팅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삼양식품은 해외 관광객을 위해 사옥 1층 로비에서 브랜드 체험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주요 관광지로 명동을 찾는 외국인들의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마케팅 전략으로 여겨진다.
김 회장에게 주어진 사업적 과제가 글로벌 전략 고도화라면 내부적인 과제는 성공적인 경영권 승계다.
김 회장의 아들인 전병우 삼양식품 최고운영책임자 전무는 2019년 10월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전략기획부문장, 전략운영본부장,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 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 헬스케어BU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1994년생인 그는 2025년 11월 입사 6년 만에 전무로 승진하며 빠르게 경영권에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 전무가 오너3세로 경영권을 쥐기 위해 내세울 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체면을 구긴 사례만 있다. 전 전무는 2021년 삼양애니를 설립하며 콘텐츠와 캐릭터 사업 등 신사업을 직접 주도했다. 이후 2022년 7월 직접 대표이사에 올랐다.
하지만 삼양애니는 2022~2023년 연속으로 순손실을 내며 부진한 실적을 보였고 전 전무는 2024년 3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