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주요국 비축 경쟁에 또 천장 뚫을 기세, 국내 반도체 전력기기 전기차업계 촉각

▲ 붉은생 안전모를 착용한 노동자가 1월19일 중국 장쑤성 화이안시 홍제구에 위치한 공장에서 구리선을 묶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구리 가격이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며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 더구나 각국의 비축 경쟁까지 벌어지며 값이 떨어지기 힘든 구조적 국면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된다.

구리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전력기기 및 태양광과 전기차 등 산업에 필수 소재라 관련 기업에선 구리 가격 동향에 촉각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 구리 가격 폭등, AI 수요·황산 공급난·광산 차질 겹쳐

13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 가격은 톤당 1만4196.50달러(약 2118만 원)를 기록해 지난 1월 나타난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금속 전문매체 킷코뉴스는 구리 가격이 인공지능(AI) 인프라와 재생에너지 등 구리를 필수 소재로 하는 산업 수요에 따라 지난 한 해 동안 이미 44%나 상승했다고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전쟁으로 황산 수급 차질 여파까지 겹쳐 가격이 추가로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황산은 구리 광석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침출 공정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중동 산유국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황산을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데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구리 생산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중개업체 RJO퓨처스의 존 카루소 수석전략가는 증권전문지 마켓워치에 “구조적인 공급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리값 주요국 비축 경쟁에 또 천장 뚫을 기세, 국내 반도체 전력기기 전기차업계 촉각

▲ 월평균 구리 가격.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로 제작>


◆ 미국·중국 구리 전략적 비축 경쟁 본격화

과거 전선 소재 정도로만 여겨지던 구리 가격 상승이 중요해진 이유는 전 세계 산업 공급망에서 커진 역할 때문이다. 구리는 인공지능부터 전기차와 방산까지 첨단 산업에서 핵심 소재로 부상했다. 

우수한 전기전도성과 열 전도성뿐 아니라 다른 주요 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덕에 구리는 미래 산업의 인프라 구축에서도 가장 현실적 소재로 평가받는다. 

이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거대 자원 수요국이 구리를 전략적으로 비축하고 나서 구리 가격을 높은 수준에 붙들어 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에 2024년의 2배에 육박하는 170만 톤의 구리가 수입됐다.

기업과 정부가 공급 부족과 가격 변동성 등으로부터 국가 제조업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 비축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게다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 2월2일 120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의 광물 비축 사업인 ‘프로젝트 볼트’도 출범시켰다. 대상 광물에는 구리도 포함됐다. 

중국 비철금속산업협회 또한 올해 2월2일 진행한 연례 동향 브리핑에서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구리 비축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로이터는 중국이 구리를 이미 200만 톤이나 비축해 놓고 있다는 시장 추정치를 보도했다. 이는 전 세계 연간 구리 생산량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추산된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주요국이 이란 전쟁으로 석유 공급이 어려웠던 것처럼 구리 공급이 끊길 경우를 대비해 금속을 비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리값 주요국 비축 경쟁에 또 천장 뚫을 기세, 국내 반도체 전력기기 전기차업계 촉각

▲ 송전탑과 전신주가 13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 벨레어에 위치한 변전소 안에 줄지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 반도체·전기차·전력기기 산업, 구리 가격 고공 행진에 촉각

이처럼 구리 가격이 구조적 요인으로 계속 고공행진하면 반도체와 전기차 및 전력기기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비용 상승이라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슈퍼사이클을 맞은 변압기와 케이블 등 전력기기와 전선을 포함한 전력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변압기에는 대당 평균 5~10톤의 구리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리 가격 고공 행진에 LS전선과 효성중공업 등 구리 가공기업들이 영향권에 들 수 있다. 
 
전기차 제조기업도 구리 가격 상승에 노출된다. 전기차 배터리 셀과 팩 및 모터 권선과 고전류 배선 등 전기가 흐르는 모든 부품에 구리가 사용된다.

세계구리협회에 따르면 전기차 1대에는 내연기관차보다 약 2~4배 많은 평균 83㎏의 구리가 쓰인다. 

더구나 구리는 반도체 회로를 구성하는 미세한 전선이나 패키징 소재로도 들어간다. 

로이터는 구리를 대체할 소재 연구가 진행중이지만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구리를 능가하는 소재는 아직 없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2024년부터 반도체 기판에 포함된 구리 소재를 재활용 소재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인공지능 수요와 이란 전쟁에 각국이 전략 비축량까지 늘려 구리 가격 인상을 부추기다 보니 전력기기와 전기차 및 반도체 등 제조 기업에 비용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구리는 배터리 기술과 전기 인프라에 사용되므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필수”라며 “전쟁으로 인해 각국이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으로의 에너지원 다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시기에 구리 가격 상승은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근호 기자